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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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등장하는 전쟁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책을 집어 들었는데, 막상 본문을 읽어내려가며 두 가지 내용에 경악했다. 첫째는, 여기에 등장하는 용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유창하게 말을 해서 인간과 직접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또 하나는 그런 용들을 알시기부터 가축처럼 사육하고 심지어 인간의 전쟁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설정은 어이없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높은 지능을 지니고 수명도 훨씬 긴 용들이 인간에게 사육되고 이용당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알에서 나오기 전부터 인간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야말로 용을 가축 내지는 노예처럼 다룬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테메레르의 존재, 테레메르와 로렌스의 특별한 관계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알에서 나올 때부터 테메레르는 스스로 자신이 태우게 될 인간을 선택했다. 태어난지 몇달만에 수학과 천체역학을 이해하고 정치를 논할 만큼 높은 지능과 강한 자의식의 테메레르는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다. 종종 로렌스가 테메레르를 길들이는 게 아니라 테메레르가 로렌스를 길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둘의 만남이 아무리 특별해도 사회적으로 용이 인간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그냥 판타지소설일 뿐이다. 포켓몬스터를 보며 동물학대를 논하는 것만큼 우스운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권 아니, 용권(dragon rights)이 무시되는 상황이 비윤리적으로 느껴졌다. 이 갑갑한 세계에서 테메레르가 뭔가 혁명이라도 일으켜주길 기대한달까.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독립전쟁 이전에 용권 해방 전쟁이라도 필요할 기세다. 2권부터는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영국에 남아 혁명을 일으켜줄 걸로 보이지는 않지만.

19세기의 공군이라거나 여성이 군인이 되어 남성들과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한다는 설정은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분명 파격적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용과 비행사의 강한 유대도 감동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품종을 따져가며 애완동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인간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이다보니 그게 조금 특별해 보일 뿐이다.

바다와 지상과 하늘을 오가는 장면묘사나 다양한 용들의 모습과 비행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던데 적어도 볼거리는 제법 나올 것 같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전쟁에 동원된 용들이 스크린에 피를 뿌리며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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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거리
아리카와 히로 지음, 김소연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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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으로 유명한 아리카와 히로의 초기 작품인 소금의 거리. 일러스트는 별로 취향이 아니었지만 내용 자체는 무척 흥미로웠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소금 기둥이 나타나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소금 덩어리로 변해가면서 세계는 멸망을 향해 기울어 간다. 종말을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그 매개가 소금이라는 점이 나름 신선했다. 여기에 정체도 목적도 방법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침략이라는 설정이 SF스러운 면도 있다.

그러면서 언뜻 그냥 사랑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세계에서도 인간들은 여전히 사랑을 한다. 마지막 순간 깨닫는 사랑, 죽음을 눈앞에 두고 찾아온 사랑, 세계의 운명과도 맞바꿀 수 있는 사랑. 일단 배경이 되는 상황 자체가 비일상적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랑들이 그다지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절박한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도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멸종의 위기에 처한 순간에 더 강렬하게 발휘될 수도 있으리라. 혹은 롤러코스터 효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세계의 멸망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뒤섞여 사랑이라는 감정과 혼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소금으로 뒤덥힌 세계에서 그들의 사랑은 조금 많이 짜다. 너무 짠맛에 익숙해지다 보면 미각이 둔해질 수 있다. 과연 소금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았을 때, 짠맛을 걷어 냈을 때, 그들은 계속 예전처럼 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끈 요소는 "소금 덩어리의 침략"이라는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을 해대지만 그것들은 단지 라이트노벨 처럼 꾸미는 겉포장으로 보일 뿐이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소재이니까. 원래는 쓴 맛인데 그걸 감추기 위해 소금을 잔뜩 집어 넣은 것 같달지. 멸망해가는 세계를 다루다 보니 단맛을 강하게 넣기는 어려웠을 테고 말이다.

삭막하고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리에의 담담한 태도가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이리에는 소금 덩어리와 싸우기 위해, 생존을 위해 타인의 사랑을 이용한다. 그가 한 짓들을 모두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염해가 침략 행위라면 사랑도 인류의 생존을 위한 본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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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루즈 2 - J Novel
김주영 지음, 문성호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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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알려진 익숙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비틀어 보는 것은 이제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 같다. 거창하게 패러디네 포스트 모더니즘이네 하는 말들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말이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기묘한 사건들을 풀어 가는 해결사 이카의 모험은 2권에서도 계속 된다. 토끼의 간 이야기에서부터 선녀와 나무꾼까지 온갖 동화와 설화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비틀리고 뒤집어진다.

1권도 재미있었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2%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는데 2권에서는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보다 충실하게 이야기를 엮어 간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고 동화속 캐릭터들이 뛰어다니면서 PDA와 휴대폰, GPS같은 첨단 장비들이 총동원된다. 토끼의 간 이야기를 하나 싶더니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튀어나온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앞뒤가 착착 맞아들어가며 절묘하게 흘러간다. 미녀와 야수의 사랑이야기는 복마전으로 얽힌 사채업자와 폭력배들의 싸움판이 되나 싶더니 야수와 미남(?)의 이야기로 뒤바뀌어 버린다.

첫번째 이야기인 "마지막 경주"에서는 장기기증을 다루고 있고, 네번째 이야기인 "선녀가 내리는 밤"에서도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뒤집으면서 동시에 결혼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동화 비틀기만이 아니라 현실 비틀기를 시도함으로써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고 또다른 재미를 준다.

여기에는 더이상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식의 해피엔딩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책없이 비극과 엽기로 말아먹는 것도 아니다. 이카가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사건의 주변에 자리하면서 "그래서 당신은?"이라는 식의 애매한 결말을 툭툭 던질 뿐이다. 이렇게 대상과 거리를 두면서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그 다음이 해피엔딩이 될지 또다른 비극의 발단이 될지는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2권으로 넘어오면서 캐릭터들의 매력도 한층 짙어지는데 역시 "검은 웬디"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사스케나가 단연 돋보인다. 과묵하면서 단순무식한 바신도 점점더 마음에 든다. 과연 이들과 이카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도 기대.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카의 지워진 기억이 무엇이고 왜 그랬는데, 다르케가 무엇인지, 비냔이 누구인지 등 많은 부분이 물음표로 남아 있다. 정보들이 어느 정도 흘러나오긴 했지만 아직은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과연 그걸 다 풀어놓을지 "네버 엔딩 스토리"로 남겨둘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 책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일러스트. 차라리 라이트노벨 레이블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싶기도 하고, 내용은 참 좋은데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일러스트가 매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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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월드 1 - 마법의 색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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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마법, 다양한 이종족과 신들까지. 이쯤되면 어지간한 판타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디스크월드의 구성원들은 전형적인 설정에서 어딘가 조금씩(?) 어긋났달지 현실적이랄지. 아무튼, 재미있다.

거북이 등짝위에 놓인 거대한 땅덩어리라는 설정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전사네 마법사네 하면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사리사욕과 공명심을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내곤 한다.

디스크월드에 대한 짧은 소개에서 호기심을 자아내고, 모험의 땅 앙크모포크에 관광온 두송이꽃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황금도시에서 왔다는 두송이꽃은 책으로만 보던 전사와 마법사, 드래곤 같은 것들을 직접 보기 위해 이 땅에 "관광" 왔다. 커다란 짐짝을 끌고 다니면서 돈을 뿌리고 가는 곳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관광객이다. 어떤 황당한 상황이 닥쳐도 즐겁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까지도. 마치 테마파크에 놀러온 것마냥 두송이꽃은 그에게 닥쳐오는 환상적인 모험들을 즐긴다.

그에 비해 어찌어찌 안내를 맡게 된 어설픈 마법사 린스윈드는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명색이 마법사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쩔쩔매고 궁상이나 떠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보는 이를 유쾌하게 한다.

대사는 없지만 주인인 두송이꽃을 따라다니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짐짝'도 놓칠 수 없는 매력 캐릭터다. 린스윈드를 집요하게 따라다니지만 번번이 놓치고 마는 어딘가 어설픈 사신이나 '반'투명드래건에서는 그냥 폭소. (희대의 괴작 <투명드래곤>을 떠올려 버렸다. -_-;)

기초가 튼튼하지만 무겁지 않고,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는 이야기였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면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디스크월드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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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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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곧잘 보지만,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실격에 대해 처음 알게 됐던 건 몇 해 전인가 오바타 타케시가 표지를 그렸다는 소식을 통해서였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이 오바타 타케시는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 <데스노트> 등을 그린 일본의 유명 만화가. 그가 표지를 그린 <인간실격>은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들었다.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오바타 타케시는 여기서도 캐릭터 원안를 맡았다고 한다.

오바타 타케시의 그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원서를 구해 읽을 만큼은 아닌지라 결국 평범한(...) 표지의 번역서를 읽게 되었다.

"세계문학전집"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어서 진부하고 따분하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주인공이 눈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마치 20세기 중반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독백조의 문체. 존재 자체가 허무인 한 인간의 심리를 흐르듯이 하지만 집요하게 따라가는 문장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참 이상한 느낌의 소설이다. 좋으면서 싫고 좋지 않으면서 싫지 않고. 나약한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공감이 가면서도 너무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슴속 아주 깊은 곳까지 콕콕 찔러댈 때는 불쾌해진다. 내가 이미 "세상"에 물들어 버려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허무와 절망, 끝없는 추락같은 것들로 채워져 답답하면서도 진부한 희망이나 가식적인 정의를 남기지 않고 끊어버려 처절한 고통과 허무만 남기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기도 한다. 자전적이고 뭐고 이전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막연하게 짐작해보며 창작자의 고통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작품은 1948년에 쓰여졌다고 한다. 몇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우울증에 빠진 작가 개인의 심리도 반영되었겠지만, 아마 패전후 일본의 불안한 정세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수십년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었지만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이니 소셜네트워크니 하는 첨단 기술이 쏟아져도 여전히 개인은 고독과 불안속에서 허우적대고 인간들은 가식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21세기에도 읽히는 <인간실격>을 보며 이것이 문학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싶어 씁쓸한 미소를 떠올려볼 뿐이다.

 
같이 수록된 단편 <직소>. 뭔가 했더니 성경에 나오는 가롯 유다의 이야기더라지.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성모독이네 어쩌네 하며 비판하려들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 인간의 넋두리 정도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랑과 질투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나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 놓으면서도 예수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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