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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곧잘 보지만,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실격에 대해 처음 알게 됐던 건 몇 해 전인가 오바타 타케시가 표지를 그렸다는 소식을 통해서였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이 오바타 타케시는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 <데스노트> 등을 그린 일본의 유명 만화가. 그가 표지를 그린 <인간실격>은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들었다.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오바타 타케시는 여기서도 캐릭터 원안를 맡았다고 한다.
오바타 타케시의 그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원서를 구해 읽을 만큼은 아닌지라 결국 평범한(...) 표지의 번역서를 읽게 되었다.
"세계문학전집"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어서 진부하고 따분하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주인공이 눈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마치 20세기 중반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독백조의 문체. 존재 자체가 허무인 한 인간의 심리를 흐르듯이 하지만 집요하게 따라가는 문장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참 이상한 느낌의 소설이다. 좋으면서 싫고 좋지 않으면서 싫지 않고. 나약한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공감이 가면서도 너무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슴속 아주 깊은 곳까지 콕콕 찔러댈 때는 불쾌해진다. 내가 이미 "세상"에 물들어 버려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허무와 절망, 끝없는 추락같은 것들로 채워져 답답하면서도 진부한 희망이나 가식적인 정의를 남기지 않고 끊어버려 처절한 고통과 허무만 남기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기도 한다. 자전적이고 뭐고 이전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막연하게 짐작해보며 창작자의 고통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작품은 1948년에 쓰여졌다고 한다. 몇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우울증에 빠진 작가 개인의 심리도 반영되었겠지만, 아마 패전후 일본의 불안한 정세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수십년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었지만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이니 소셜네트워크니 하는 첨단 기술이 쏟아져도 여전히 개인은 고독과 불안속에서 허우적대고 인간들은 가식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21세기에도 읽히는 <인간실격>을 보며 이것이 문학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싶어 씁쓸한 미소를 떠올려볼 뿐이다.
같이 수록된 단편 <직소>. 뭔가 했더니 성경에 나오는 가롯 유다의 이야기더라지.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성모독이네 어쩌네 하며 비판하려들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 인간의 넋두리 정도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랑과 질투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나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 놓으면서도 예수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