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거리
아리카와 히로 지음, 김소연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도서관 전쟁>으로 유명한 아리카와 히로의 초기 작품인 소금의 거리. 일러스트는 별로 취향이 아니었지만 내용 자체는 무척 흥미로웠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소금 기둥이 나타나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소금 덩어리로 변해가면서 세계는 멸망을 향해 기울어 간다. 종말을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그 매개가 소금이라는 점이 나름 신선했다. 여기에 정체도 목적도 방법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침략이라는 설정이 SF스러운 면도 있다.

그러면서 언뜻 그냥 사랑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세계에서도 인간들은 여전히 사랑을 한다. 마지막 순간 깨닫는 사랑, 죽음을 눈앞에 두고 찾아온 사랑, 세계의 운명과도 맞바꿀 수 있는 사랑. 일단 배경이 되는 상황 자체가 비일상적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랑들이 그다지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절박한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도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멸종의 위기에 처한 순간에 더 강렬하게 발휘될 수도 있으리라. 혹은 롤러코스터 효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세계의 멸망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뒤섞여 사랑이라는 감정과 혼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소금으로 뒤덥힌 세계에서 그들의 사랑은 조금 많이 짜다. 너무 짠맛에 익숙해지다 보면 미각이 둔해질 수 있다. 과연 소금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았을 때, 짠맛을 걷어 냈을 때, 그들은 계속 예전처럼 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끈 요소는 "소금 덩어리의 침략"이라는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을 해대지만 그것들은 단지 라이트노벨 처럼 꾸미는 겉포장으로 보일 뿐이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소재이니까. 원래는 쓴 맛인데 그걸 감추기 위해 소금을 잔뜩 집어 넣은 것 같달지. 멸망해가는 세계를 다루다 보니 단맛을 강하게 넣기는 어려웠을 테고 말이다.

삭막하고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리에의 담담한 태도가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이리에는 소금 덩어리와 싸우기 위해, 생존을 위해 타인의 사랑을 이용한다. 그가 한 짓들을 모두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염해가 침략 행위라면 사랑도 인류의 생존을 위한 본능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