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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록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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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배경은 근미래. 각종 최첨단 디지털 장비와 무기들로 무장한 요원들. 정체불명의 암살집단과 그 배후세력.

스릴러나 첩보물에 어울릴 법한 설정이다. 그러나 정작 글에서는 무협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단순히 주인공이 무술의 고수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두운 과거를 감춘 숨은 실력자라거나 혼자서 수많은 적들을 상대해 물리친다거나 하는 내용부터 의리나 신념같은 것을 내세우는 캐릭터들, 나아가 대사와 문체에서도 무협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하나의 이야기안에 담아내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하나의 이야기속에 그것들을 제대로 녹여냈는가 하는 점이다. 그점에서 이 책은 어딘가 어색하다.

"그녀가 찍은 사진의 필름을 입수하지 못한 탓이었다." - 본문 74쪽에서.

에? 필름? 갑자기 뭔 필름?

요즘에도 필름카메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의 배경은 5,6년후의 미래다. 더군다나 이 장면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은 기자다. 물론,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는 있다. 하지만, 사건을 취재해서 빠르게 전송해야 하는 기자가 필름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돌아 다닌다는 건 역시 어색해 보인다. 메모리카드만 뽑으면 될 일을 필름씩이나 찾고 있다니.

이런 식으로 이게 굳이 여기에 등장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경우부터 도저히 저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아이템 등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의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성격이나 주변 인물들의 근거없는 믿음 등도 글을 어색하게 만드는 요소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냥' 무협이었다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그냥 정의감 넘치고 킹왕짱 센 주인공이 어찌어찌 사건에 휘말리고 모두의 믿음과 기대속에 악당들을 해치우고 돌아온다는 식. 거기에 적당히 강한 라이벌과 주인공의 매력을 받쳐줄 여성들까지. 사소한 부분에 민감하지 않다면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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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노블우드 클럽 5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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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에 걷다>에 이어 두번 째로 읽는 존 딕슨 카의 작품이다. 과연... 사람들이 왜 존 딕슨 카를 그렇게 찬양하는지 다시 한번 납득시켜주는 책이었다.

사건과 단서들, 그리고 추리가 착착 맞아떨어지며 명쾌하게 사건이 해결되는 것. 증거를 넣으면 데이터가 바로바로 나오는 CSI식의 사건 해결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추리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 흔히 나오는 그런 과정은 사실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존 딕슨 카의 작품은 아마도 판타지의 극한을 향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

작은 조각 퍼즐 하나하나를 끼워 맞추듯 사건을 재구성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그러면서 한 부분의 퍼즐을 맞추면 또다른 그림의 일부가 보이며 더 큰 퍼즐로 이어진다.

글을 읽는 내내 뭔가 속고 있다, 우롱당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것은 이 책이 "말", 즉, 진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그 설명은 다시 제 3자를 통해 전달된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액자 구조안에 엮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하고 1인칭 시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인식 범위가 제한 된다. 그리고 이들 또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증인의 진술에 의존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정보는 다시 한번 제한되고 조작되고 왜곡된다. 여기에 다시 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가 얽히면서 "말"들은 경찰과 독자를 우롱한다.

만약 이런 걸 영화로 만든다면 좀 지루해질지도 모르겠다. 각색을 좀 많이 한다면 모르지만. 어쩌면 소설이기에 가능한,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단지, 잘 짜여진 사건 구성에 비해 결말이 좀 허무했다. 경찰과 탐정이 넷이나 모여서 고작 내린 결론이 그거라니. 인과응보나 정의구현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좀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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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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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부터 비리 경찰, 사회 계층간 위화감과 해외 입양에 이르기까지. 심각하다면 심각한 문제들이 곳곳에 퍼져있는 이야기다. 그중에 아무거나 붙잡고 늘어지자면 한없이 진지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뒷맛이 좀 무심해 보인다.

제목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이지만 등장 인물들은 전혀 시크하지 않다. 타인에게는 신랄하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고 뛰어다니는 경찰들이면서, 정작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주인공과 여타 인물들의 모습이 이 책의 주요 감상 포인트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리고 거기에 허세와 가식으로 찌든 현실 사회의 모습을 겹쳐놓으면 한 편의 풍자 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개성 강한 주인공, 매력적인 범죄자, 그들의 동료와 가족, 애인 등 주변인물들을 적절히 버무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상이 녹아든 대사속에서 종종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식상함을 느끼며 책을 덮어버린 순간도 많았다.

중년의 위기가 느껴지는 형사와 어중간한 젊은 형사의 조합이나, 겉모습은 엄친아이지만 어두운 과거를 지닌 남자, 그런 남자들과 사랑에 목메는 여자들.

남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심리를 나름 잘 묘사한 듯 보이기는 한다. 괜히 힘자랑 하다가 삐끗하는 남자라면 주위에서 곧잘 발견하니까. 근데, 너무 남자 이야기에만 치중해서 그런지 오히려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저런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의 결혼/연애 대상으로만 다뤄지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공감이 안 갔다.

그냥 무료한 저녁 시간에 채널 돌리다 우연히 발견한 괜찮은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난 기분이랄까. 좀 진부하고 식상한 감도 없지 않지만, 웃고 떠들며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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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의 바다 Nobless Club 16
민소영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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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사람을 섬에 비유하기도 했다. 개인은 섬처럼 떠 있는 존재이고 서로 뭔가 공감하거나 공유한다고 느끼는 건 모두 착각이라고.

이 책에는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족, 친구, 연인 등등 그들은 혈연으로 혹은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는 우연한 사건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관계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비밀과 어느 정도의 상처와 어느 정도의 경계를 품고 있다.

이야기가 현실감을 갖는 것은 단순히 현대의 한국땅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실상은 이계니 용이니 하는 것들이 등장하며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고 말이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고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가족, 매순간 거리를 재고 감정을 확인해야 하는 연인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동지이자 적이 되기도 하는 급우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의 경험과 감정의 흐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건이 해결되고 결말을 향해 흘러가도 여전히 가족간의 비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고 일상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모두 '섬'이니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던 형제 나무 처럼 어쩌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거리인지도 모른다.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착각은 오히려 서로에게 고통만 안겨준다.

섬사이를 흐르던 물이 결국은 하나의 바다인 것처럼 서로 갈라져 있다 해도 멀게만 보이던 그들의 인연은 언젠가 따로 또 같이 한 곳으로 모인다.



민소영 작가라고 하면 <꿈을 걷다>에서 단편을 접하긴 했지만, 평소 잘 모르던 작가다. 아마도 장편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리라. 하지만, <홍염을 성좌>, <적야의 일족>을 비롯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들었다. 그런 '내공'이 쌓여서일까, 과연 이야기를 풀어가는 균형과 노련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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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선혈 Nobless Club 15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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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아끼다 이제서야 읽은 모래선혈. 여러가지 의미에서 감동이었는데, 그 첫번째는 읽기가 편했다는 것. 노블레스클럽의 전작이었던 모 소설을 읽으며 엄청난 불편함을 겪은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이렇게 편하게 글을 써주는 작가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나 이틀만에 가볍게 클리어.

이야기가 서로 독립되어 있고, 소재도 다르긴 한데, 같은 작가의 작품인 <얼음나무 숲>과 이번 작품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본문에 전작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두 작품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았고, 어떤 면에서는 <모래선혈>을 이해하기 위해 <얼음나무 숲>을, <얼음나무 숲>을 이해하기 위해 <모래선혈>을 봐야 할 수도 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같이 쌍을 이루는 이야기다. <얼음나무 숲>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줄 단 한 사람의 청중을 찾아 헤맨 예술가의 이야기라면, <모래선혈>은 자신을 감동시켜줄 한 명의 예술가를 찾아 나선 어느 독자의 이야기다. 전작이 음악으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의 꿈과 이상을 다루고 있다면, 이번 작품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보다 보편적 주제를 이야기한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솔직히, <얼음나무 숲>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처음 열 장 정도를 읽은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의 두금거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잔인하고 섬뜩하고 괴기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유쾌하고 따뜻하며 아름답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얼음나무 숲>의 주인공들이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모래선혈>의 주인공은 사랑에 모든 것을 내맡겼다. 단순한 로맨스 소설 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그 과정은 과거를 잃고 색깔을 잃은 한 남자의 자아찾기 이기도 하다.

<얼음나무 숲>에서도 고요와 바옐을 비롯해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메뉴가 더욱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특히나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순진한 면이 있는 레아킨이라는 캐릭터는 어지간한 순정 만화(?)에 갖다놔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이 매력이 철철 넘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중반 이후 환상성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단순한 이야기속 환상으로 볼 수도 있으나 내 눈에는 레아킨의 자아처럼 보이기도 했다. 억압되고 거부당했던 또다른 자아. 궁궐에서의 완벽한 삶을 버리고 지상으로 내려온 순간 그는 일탈과 타락을 택한 셈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그에게 이국으로의 여행은 가출이었고, 감정이 지워졌던 그에게 사랑은 그 자체로 타락이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타락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 가려져 있던 진실을 보는 통로이기도 했다. 비록 그 끝이 파멸이라고 해도.

그전에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환상이다. 그것도 속국의 평민 출신 여자와 제국의 태제의 만남이라니, 완전히 판타지다. 괴로운 과거를 잊고 화려한 궁궐에 갇혀 살았던 시간과 소설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 빠져 감정을 찾아 사랑을 쫓던 시간 중 레아킨에게는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이었을까.



무척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소리 듣겠다"싶은 생각도 들었다. 본문중에는 모 일본 만화를 바로 떠올릴 법한 내용이 나오기도 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진부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재료들과 보편적인 주제를 잘 짜여진 이야기속에 녹여내는 것은 분명 작가의 능력이다. 여전히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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