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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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소중한 문학적 성취,
#책, < #유령의시간 > - #김이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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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이 소설은, 저자의 아버지를 모티브로 하였다.

분단의 아픔으로 흘려야 할 눈물을 머금고 있다.

사상과 이념 대신 가족을 택했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전쟁 중 월북했다가 다시 내려오니 가족은 주인공을 찾기 위해 월북한 상태다. 그렇게 두 아이와 헤어지고, 아내와 막내는 자신 대신 누군가에 끌려가 생사도 모른다.

남한에서 새로이 얻은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막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세 아이를 지키지 못했는데 이젠 막내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졌다. 그 상실감과 슬픔을 견디다 몸이 스르르 무너진다.

해방 전 30년, 해방 후 30년을 산 환갑의 나이에, 자서전을 쓰기로 마음을 먹지만 20여장 만을 써두고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다. 자서전을 주인공 딸, 저자가 40년 만에 완성한다.

주인공 이섭이 마지막에 죽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유령 같았던 그. 남한에도, 북한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유령의 시간을 살았다.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정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 제2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선정 사유

40년 만에 완성한, 잊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읽는,
<유령의 시간>이다.'

💬
지형은 노를 잘 젓고 싶었다. 어떤 도움도 없이 보란 듯이 혼자 배를 저어가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작은 새우 한 마리의 탄생도 우주의 생성 못지않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게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이섭은 깨달았다. 약하다는 게 모든 걸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걸. 늘 약하다는 이유로 변명이 돼주었던 그간의 행동들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공부가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선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했다.

적지 않은 재산을 일제와 전쟁을 겪으며 다 잃고 나서도 끄떡없던 장인은 사람을 잃고서는 더이상 무언가를 지킬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책을 보는 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소규모 회사에서까지 신원 조회를 당하고 나니 이 땅 어디에도 서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철저히 봉쇄당한 기분이었다. 오직 몸뚱어리 하나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서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이 몰려왔다. 아니 몸뚱어리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사지를 결박한 채 조금씩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어디 애초에 상하가 있고 귀천이 있겠느냐. 모두 힘있는 자들이 제 몫 지키느라 만든 제도일 뿐이지.

몸은 점점 물기가 말라가는데 아이들은 청대처럼 쑥쑥 자라고 있었다. 저 아이들을 끝까지 돌볼 수 있을까. 내복 바람으로 나란히 누워 깊은 잠에 빠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섭은 현기증이 일었다. 한 치 의심도 없이 저희
를 끝까지 돌봐주리라 믿고 있을 아이들이었다. 오래전 그토록 믿고 있다가 아비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몫까지, 몸이 부서져도 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언제까지 아비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마다 온몸의 뼈가 덜그럭거렸다.

맑은 물이라고 믿었던 곳에서 눈에 띄는 탁류는 몇 배나더 오염돼 보였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한 공평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이념은 어느새 빛이 바래 소수 권력자들의 치열한 암투의 수단이 돼버렸다.

이곳에서 내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네. 내가 돌아가려는 곳은 가족이 있는 집일뿐이야.

상처도 결국은 열정이 아니겠나? 인간에 대한 열정 말일세.

진심이었다고 모든 걸 용서받을 수는 없네.

저 부실한 시민아파트는 이섭의 인생을 닮아 있었다.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건물에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숨차게 살고 있었다.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 공부를 해도 뜨겁게 하고 연애를 해도 마음을 다 바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무감만 남고 사는 게 재미없어.

지형은 지우가 떠난 후부터 아버지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잃어버린 삼남매와 전부인 그리고 지우까지, 지형은 그중에 하나만 잃어버려도 분노 때문에 더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지형의 남매들은 물론 이웃들에게도 뜨거운 사람이었다. 지형은 그런 아버지가 기이해 보였다.

인간, 아니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 죽으면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이 넓고 넓은 우주 속을 날아다닐 것이다. 인간은 결국 우주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곳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아니 그것이 무엇이든, 뭐라도 있기나 한 걸까. 그저 팅 빈 공간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인간의 생이여, 헛되고 헛되도다. 하물며 이념과 꿈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지 않는 생은 또 얼마나 헛될 것인가.

어쩌면 아버지는 유령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땅 어디서
도 존재하지 못했던 유령.

소설을 다 쓰고 나서야 비로소 글쓰기의 힘을 깨달았다. 그때 나를 살린 것은 그의 이야기들로 한 칸 한 칸 메우던 글쓰기였다. 그래서 '글쓰기가 나의 구명보트였다'고 고백했다.

📚
레미제라블, 에밀, 제인 에어, 삼국유사,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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