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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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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글이 그저 한낱 시간때우기용으로 묻히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글이란 표현의 방법이다. 알려지고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소설로 받아들이자.'라는 주장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인화가 박정희 예찬론자라는건 누구도 부인할수없는 사실이며,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였고 쿠데타 괴수에 18년 군부독재자라는 점도 사실이다. 솔직히 이책을 아무런 사견없이 읽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학적으로도 그저 소설일 뿐이니 아무생각없이 읽으라는 주장에 어폐가 있는것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인화가 정조에 박정희를 덮어씌우려 한것 같다고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저 편협한 정치적 판단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을수 있겠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정조의 홍재유신 - 정설과는 거리가 멀다. - 이 실패했기에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조가 못했기에 역사의 흐름상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있을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나처럼 이책을 받아들이는게 큰 무리가 있다고 누가 말할수 있단 말인가.

책에서 주장하는 화성천도설, 상왕설, 정조 독살설 전부다 정설과는 거리가 먼 주장들이다. 수원성은 한성과 비교했을 때 규모가 턱없이 작은 성이다. 상왕설 역시 순조가 20살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 순조는 11살에 즉위한다. - 정조 독살설 역시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 한다. <영조와 정조의 나라>(박광용저)를 참조한 내용임을 밝힌다.

이인화는 심환지같은 노론이 득세했기에 나라가 망했다고 소설을 쓰고 있다. 말 그대로 소설이다. 정조 사후 벽파정권은 1804년부터 몰락하기 시작하여 1805년 정순왕후가 죽고난후 정순왕후를 제외한 벽파 전원이 역적으로 단죄되었다. 그후 안동김씨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세도정치로 들어서게되니 나라를 말아먹은건 세도정치이지 노론의 정치이념이 아니다. - 특이하게도 이인화는 이부분에서 정조사후 조선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일일히 거론하면서 세도정치 이야기는 쏙 빠져있다. -

정조가 절대왕정을 꿈꾸었다는 것 역시 작가의 상상이다. 훈구파와 사림의 피셜?대결끝에 사림정치가 열리게되었고 정조는 붕당의 폐혜를 지적했을 뿐이지 사림정치 자체를 부정한 사람이 아니다. 탕평정치 역시 사림정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의 의도 자체 역시 허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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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안 2005-09-19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전 이인화씨가 박정희 옹호자라는건 몰랐는데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문학적으로만 보자는 것에도.. 이 책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내용 전개가 너무 흡사해서 실망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더욱 실망스럽네요.. 내용이면 내용.. 주제면 주제.. 온통 짜집기라는 거잖아요.
차라리 읽지 말았으면 하는 드문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 중에 하나입니다.
아무튼 님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marine 2009-02-0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화의 역사관과는 다르게 그냥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로 읽는다면 퍽 재밌는 책입니다. 말 그대로 그냥 픽션 말이죠.
 
신화는 없다
이명박 지음 / 김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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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1995년 민자당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쓴 책이다. 이명박은 자신의 정치입문부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정주영에게 가지않았다는 점도 주목을 끄는 부분이겠지만 하필 민자당이어야 했냐는 점도 문제였기 때문이다.

민자당이 어떤 당인가.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극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똘만이들 - 흔히 신군부라고 하는 족속들 - 이 만든 정치세력이 민정당이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따내자 양김분열로 30여% 남짓한 지지율로 정권을 다시잡은 민정당은 대권욕에 눈먼 김영삼과 쿠데타를 자신들보다 먼저 성공한 전력으로 그때까지 정치권에 생존해있던 김종필을 끌어들여 민자당을 만든다. 즉, 민자당은 그때까지 정권을 거머쥐고 있는데에 성공한 신군부의 2인자였던 노태우와 원조 쿠데타 괴수 김종필과 대권욕에 눈이 멀어 이들과 손잡은 김영삼이 만든 정당이었다. 이 사건을 3당합당 혹은 3당야합이라고도 부른다. 왕년에 학생운동 물 좀 드셨다고 깝죽대는 이들이 가야될 그런 정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건 정주영과의 의리 문제가 아니었다. 이명박은 이런 이야기는 쏙빼고 그저 정주영과의 의리를 눈물을 머금고 정리하고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명박은 또한 1978년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에서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원래 7백28가구중 절반은 사원용, 절반은 일반분양용으로 승인을 받아서 사원용으로 승인받은 아파트를 사원이 아닌 특수층 - 이명박이 누구에게 주었다고 이야기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 에게만 특혜분양된 것이다. 시기도 1977년 9월에 착공한 5차분 분양이었으니 아파트붐 이전이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설마 현대가 어떠한 정경유착도 없이 군부개발독재시대를 보냈다고 믿는 이들은 없을거라 본다.

물론 자서전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밝혀야할 필요는 없다. 또한 이명박이 능력이 없다고 힐난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은 평범하지 않으며 자랑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신화는 없으되 변명은 있다.'는 것이다. 자서전은 다 일정부분 자신을 긍정하고싶은 이들이 쓰는 책이기에 어느정도 객관성이 떨어진다. 자서전의 이런 약점은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 인정할수 없다면 문학의 한종류를 매장시키는 야만으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 그러나 아예 사실자체를 모른채 지나가지는 말자. 그리고 자서전과는 별개로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앞에서 객관적이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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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
강기준 / 다물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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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극우들을 뭉뚱그려 평하자면 단순하다. 아니 이들은 그저 단순하다. 이게 최대의 장점이며 극우가 오늘날까지 기세를 펼수있는 결정적 이유이다.

우선 이들은 정의와 증오를 구별하려하지 않는다. - 모른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 덧붙이자면 굳이 구분해야할 필요를 못느끼는 것 같다. 우리민족이 반만년동안 900여차례의 외침을 받았으며 중국과 일본이 침략의 주범임은 분명하나 고대때부터 중국과의 경제,문화교류를 통해 많은 문물을 접할수 있었으며 일본은 삼국시대때부터 고구려,백제,신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민족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반자로 선택했었다. 일본은 백제의 동맹국이었으며 그후에는 발해의 동맹국이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가.

이들은 극구 자신들은 극우국수주의자가 아니며 만주를 당장 우리땅으로 만들자고 만든 단체가 아니라고 변명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우선 틀린면을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본받아야할 대상으로 꼽는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같은 경우, 책에서 강변해 마지않는 2천년전의 자기땅을 되찾는 정당한 주장이 아니라 2천년 전의 일을 핑계로 팔레스타인을 괴롭히는 깡패의 논리이다. 이들의 만주를 경제적으로 우리민족의 영향하에 두자는 주장은 중국과 사이좋게 교류협력하자는 논지가 아니라 대륙진줄과 다물이라는 명분론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일본의 대륙진출과 대동아 공영론과 똑같은 이야기이다. -

이들의 변명이 맞는면도 있는 것은 본목적이 우리민족의 영광(?)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극우국수주의자들이 우리사회에 등장한건 군부독재의 덕을 톡톡히 봤는데 - 일본의 사무라이 기질을 좋아했다는 박정희의 취향 덕이든지 아니면 민주에 목마른 민중들의 관심을 바깥으로 돌리고자 했던 속셈덕이었든지 - 그 덕택에 우리사회내의 개혁.진보적 과제들에 대한 단순무식한 잡설들을 쏟아내는 것에도 주력하면서 지금은 사회내의 꼴통 주류카르텔을 지키는 충견이 되어있다. 중국,일본 가리지않고 민족감정을 앞세워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자고 역설하면서 특이하게 우리민족을 두동강낸 주범인 미국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말도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들의 볼썽사나운 도저히 지도라 말할수없는 그림들에 대한 고찰은 시간아깝게 설명할 필요조차 못느끼겠다. 한가지 웃긴 점은 왜 우리민족의 시작(한인시대)이 하필 기원전 7197년이어야 했나하는 점이다. 이책을 1997년에 냈으니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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