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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평점 :
또 노래 소리가 들려올까봐 신경이 쓰인다. 아까부터 앞 빌라에서 틀어놓은 노래 소리가 방음 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것만 같은 우리 집으로 들려온다. 이번 달 초에 우리 집은 6년간 살아온 집에서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다닥다닥 빌라가 붙어있는 동네였다. 더운 날씨라 창문을 열어 놓으면 앞인지 옆인지 모를 곳에서 칼칼한 목소리의 아줌마가 딸을 구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음식쓰레기나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동네. 오늘도 방금 전에도 나는 이 동네에서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아이이다. 그것을 알고 있다. '시에라리온' 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의 늙은 엄마를 두고 피난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왔더니 이미 엄마의 머리가 땅에 굴러다니는 것을 본 여인에 비하자면 나는 천국에 사는 사람이다.
김혜자는 TV에서봤던 배우이다. 재미가 너무 없어보여서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은 전원일기의 꾸준히 출연한 배우. 꾸준하게 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하면서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는 들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배우가 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쉽게 얘기 할 수가 없게 됐다.
‘아프리카‘ 라는 땅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혀온다. 까만 사람들, 바짝 메마른 땅, 후끈후끈한 열기, 배가 볼록 나온 아이들이 끔뻑이는 눈.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그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이득도 없이, 조건도 없이 자신의 것을 내주는 일. 그 일을 김혜자는 10년 이상 해왔다. 부모의 빚 때문에 교육받지도 못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위해 선뜻 그 자리에서 빚을 다 갚아주고 ’집‘이라고 불수도 없는 집에 사는 소녀를 위해 집을 고쳐주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선행을 베푸는 그런 일들을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세계 인구를 100 명으로 보았을 때 50명은 영양부족, 20명은 영양실조,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이다. ‘ 라는 구절이 나온다. 평화로운 땅을 침략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멋대로 부려먹은 사람들은 비만에 걸려 죽을 지경이고 그들 밑에서 뼈 빠지게 일한 사람들은 굶어 죽을 판이라는 아이러니.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째서 이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는 걸까. 아마 신은 우리에게 그 임무를 주신 것 같다. 단돈 10,000원이면 한 아이를 1달 동안 풍족하게 먹일 수 있다. 우리가 허무하게 써버리는 돈 만원이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금액이다. 서로를 도우라고 신은 잠자코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