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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 창비 / 2004년 11월
평점 :
평소 우리는 미국에 관한 정보를 무엇을 통해서 접하는가? 신문, TV나 영화 같은 대중매체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업매체는 사실을 전달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사실들 중에 시스템에 걸러진 것만 전달하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하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미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이미지는 대중매체들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다. 나는 이들 매체들에 의해 걸러져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경우, 미국에 다섯 달 남짓 살면서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사실들에 대해 이 책은 어떤 판단의 기준, 어떤 관점 같은 것을 제공해주었다.
미국의 여러 행태 중 지금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중요한 이슈는 단연 이라크 전쟁일 것이다. 책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 이라크 전쟁은 2차 대전으로부터 시작해 지금껏 미국이 계속해온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전쟁들의 한 단면이다. 때문에 이라크전에 대한 분석은 ‘미국과 전쟁’이라는 일반화된 주제로 넘어간다. 잘 알려진 큰 전쟁으로부터 시작해 언론에서는 거의 외면 받은 ‘잊혀진’ 전쟁들까지를 통틀어서 흐르는 하나의 전쟁 메커니즘이 있다. 미국 주류 세력은 계속해서 내외부의 적을 만들고 적과의 대립과 전쟁을 선포하며 그것을 기득권 유지에 활용한다. 미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 작은 나라들만이 전쟁의 대상이 된다. 처음에는 경제 제재 등을 통해 대상에 압박을 가하고, 의도적으로 허점을 보이거나 실수를 해서 대상으로부터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는 그 피해를 열배, 스무 배로 갚는 보복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전쟁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시장과 제국주의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은 20, 21세기의 신형 제국주의 국가이다. 제국주의란 군사력을 통한 경제적 착취뿐 아니라 자기 나라의 법과 제도를 다른 민족이나 인종이 살고 있는 곳까지 강제로 확대시키는 것까지를 말한다. 이런 정의대로라면 미국이야말로 제국주의의 표본이 된다.
로마에 관한 슘페터의 예리한 관찰력을 통하면 지구상에 이익을 위협받지 않는 곳은 없고, 그런 사실이 있는 곳에는 항상 로마나 그 우방이 있어 왔다. 그리고 로마나 우방의 이익이 침해되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로마군이 움직인다. 과거 로마처럼 미국도 세계 곳곳에 ‘혈맹’국가들을 갖고 있고, 이들은 침략에 대한 합법적 명분으로 이용되어왔다. 일단 미국에 의해 침략을 당한 국가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명목 아래 미군이 조작하는 선거를 통해 친미 정권이 세워진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이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해 미국 기업의 정복지 시장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이 보장된다.
옛날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침략지를 직접 다스릴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저 전쟁을 통해 시장을 개척하고, 무기를 판매하고, 석유자원을 확보하기만 하면 미국 내의 엄청난 소비력을 지탱하는 데에 문제가 없어진다. 내가 직접 보고 온 미국은 엄청난 낭비의 나라였다. 가족 구성원 숫자대로 차가 있고, 모두가 차를 한 대씩 타고 다닌다. 땅덩어리가 넓어서라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은 도시계획이 이런 시스템에 의해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대중교통은 전혀 갖춰지지 않고, 건물들은 2층 이상을 넘어가지 않게 지으면서 쫙 펼쳐 놓았다. 애초에 이렇게 계획된 도시는 1인1차의 시스템을 전제로 한 것이다. 먹는 것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음식을 버리는 데에는 눈꼽 만큼의 죄의식도 갖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해서 소비가 늘면 수요가 느는 것이고 공급이 이에 맞춰 늘어나므로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원천이 어디인가? 결국에 전쟁은 이 같은 왕성한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시장 확대의 필요성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은 자국민의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해서 일삼고 있는 것이다.
뒤를 이어 책의 후반에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과 사회 내부의 문제 등을 짚어본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낀 미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 파시즘과 비슷했다. 국가가 사기업이 되고 정치인들은 경영자다. 각종 사회 안전망은 사라지고 ‘시장’의 이름하에 효율성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사회 전체에 적용된다. 거대 자본에 종식된 대다수 언론들은 정부와 보조를 맞춰 국민을 우중으로 만들어가고, 9.11테러로 득세한 극우파들은 양심 있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마저 억누른다. 침묵의 나선이론처럼 이성적인 목소리는 시간이 흐르며 더더욱 줄어가고,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테러라고만 바꾼 새로운 매카시즘이 온 사회를 관통하며 국민들을 애국자와 적으로 분류한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진실이고, 객관적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책을 읽을 때에도 시종일관 나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였고, 객관성 면에서 여러 가지 오류도 발견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접하는 대중매체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도 전적으로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쓰여 졌다. 다만 기성매체들과 이 책은 사실이라는 커다란 화면에서 서로 비추는 곳이 다를 뿐이다. 세상의 어떤 매체도 이런 관점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비중대로 전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종류의 매체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여러 매체를 접함으로써 자신만의 넓은 화면을 완성해가는 것이 식자(識者)의 옳은 태도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