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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7세기 과학혁명과 함께 계몽주의라는 사상이 탄생한 이래,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우리는 이 패러다임의 충실한 신봉자로서, 부나 명예로 가늠되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아둥바둥'거리며 살고 있다. 발전과 진보에의 맹신으로 무장된 이 사회에서 느림이나 여유, 친절이나 情은 모두 전근대적인 것으로 무시받기 쉽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미친듯이 앞만 보고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위해?' 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있다.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노자의 도덕경이나 장자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책들이 비교적 어려운 철학적 사고들을 담고 있는 반면, 이 모모라는 동화책은 같은 메시지를 쉬우면서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미하엘 엔데는 위에 언급한 맹신, 아둥바둥거리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불안감의 근원을 '회색 신사'로 의인화 했다.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서 혼자 사는 주인공 소녀 모모. 모모의 이웃들은 원래 정이 많고, 주변을 돌보거나 작은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돈이나 성공보다 사람들과 아름답게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가끔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는 법이다. 바로 그럴 때 회색 신사가 사람들을 찾아와 계약을 하고 시간을 뺏아간다. 시간저축은행의 회색신사가 일단 다녀가고 나면 사람들은 이웃과 담소하고, 부모님과 얘기하거나, 주변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을 시간낭비라고 여기고 미친듯이 바쁘게 살아간다. 모모가 거북이 카시오페아와 호라박사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의 시간을 먹고 사는 회색신사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이 책에는 위의 주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지혜가 담겨있다. 동화책답게 모두 읽기 쉬운 부드러운 말로써, 비유를 통해 얘기하고 있는데, 역시 어려운 진실은 쉬운 말로도 표현이 되는 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직유, 은유와 같은 수사법과 형용사 가득한 유쾌한 상상, 장자의 호접지몽을 생각케 하는 성공의 의미, 그에 담긴 진실, 시간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이처럼 분량이 작은 책이 이 많은 의미있는 생각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선물을 받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동화책을 읽을 생각이나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감히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