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 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2009년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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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인생이다. 아직도 누군가를 의심하고 미워하고 원망한다면 그 시간만큼 나는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이리라.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서 털어버려야 한다. p.167

 누군가는 이런 글을 보고 깊이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기행문도 아니고, 음식 소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의식이 넘치는 글도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소소한 기록에서 간간히 눈물을 떨구었다. (늙은게다. 아무때나 울컥하는 이 병은 분명 그 탓이다)

 65세의 할머니가 혼자서 해남 땅끝마을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23일동안 걸었다.
나는 이 단순한 사실 하나 앞에서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체력이나 시간 혹은 여행 경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혼자서 떠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눈물겹다. 혼자 먼 길 떠나고 싶다고, 일상을 털어내고 싶다고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건 아님을 알기에 난 그 사실 앞에서 존경을 보낸다. 할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진심이에요.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을 살았고, 두 아들의 엄한 어머니로, 또 평생 사업운이라고는 전혀 없는 남편의 치닥거리로 살았다. 여행 중간중간 회고하는 옛 일들이란, 아무리 시대가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나같으면도저히 버텨내지 못했을 고난의 세월이었더라. 아이 갓 낳고 먹을 것 하나도 없이, 아침이면 밤새 입김에 이불깃이 얼어 바작거리는 냉방에서도 견뎌야 했단다. 그런 날들이 평생 계속 되었어도, 월급이 늘 빚쟁이에게 차압당해 가난에 허우적 거렸어도 그녀는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 고귀한 영혼이라니!

 길에서 만난 많은 친절한 이들,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하루라도 같이 걷자고 찾아오는 따뜻한 인연들, 혼자 걸어야 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펑펑 우는 며느리. 그들의 모습에 울컥한다. 혼자 떠난줄 모랐던 남편, 스무날이 지나서 응원하러 왔다가 '내가 당신한테 뭘 잘못했는데 이런 짓을 한거야?'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에서도 나는 또 울컥한다.

 그녀의 국토종단은 '혼자'였기에 아름다웠다. 또한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기에 더 아름다웠다. 퇴직 후 그녀는 산을 올랐고, 암벽도 무서워 하지 않았으며, 인터넷 쓰는게 아주 자연스럽고, 인터넷 카페에서도 맹렬히 글을 올리고, 블로그까지 운영하고, 네이게이션을 달았어도 매번 길을 잃는데도 두려워않고 운전을 한다. 아직도 해본 일보다는 해보고 싶은 일들이 더 많다는 그녀는 자신의 꿈과 도전엔 마침표가 없다고 되뇌인다.

 이 모든 것에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당당하고 용기있는 그녀에게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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