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더할 나위없이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이 35세에 갑자기 사악하고 파괴적인 살인자로 돌변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짚어 두어야겠다. 살인의 전조가 되는 행동은 그 이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전된다.  p.138

 

최근의 끔찍한 뉴스 중 한 가지는 고양이에게 대못을 박거나, 불을 지른 후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등의 무시무시한 동물 학대였다. 정신과 의사 혹은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들은 동물학대가 인간을 상대로 한 범죄의 전 단계라고 경고 했다. 그 경고를 들으며 난 ‘설마...’라는 심정이었다. 물론 그 심정은 전문가를 믿을 수 없다기 보다는 믿기 싫다는 심정이었으리라.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인가’로 바뀌게 된다. 정말 살인의 전 단계로 동물을 죽이거나 학대하는 이들이 많더란 말이다.


FBI 범죄심리분석관이라는 업무를 수십 년간 맡아온 저자 로버트 K 레슬러는 연쇄 살인범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살인자들의 유형을 정리한다. 이러한 프로파일링을 통해 경찰이 범인을 찾기 쉽게 도와주는 것이다. 즉 범죄 현장을 보면서 범인이 남자인지, 백인인지, 10대인지 등등 용의자의 범위를 줄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누누이 프로파일링이 족집게도 아니고,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마법도구도 아님을 강조한다. 범인을 잡는 것은 손과 발로, 온몸으로 현장을 누비는 경찰의 공이라고 말이다. 하긴 얼핏 들어서는 프로파일러가 무슨 점쟁이 같기도 하다. 심지어 경찰마저도 “프로파일러들이 용의자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짚어내던지, 용의자 전화번호는 왜 안 알려주느냐고 FBI에 물어보았을 정도라니까요”라고 농담할 지경이니까 말이다.


‘범죄자의 성격이나 행동에 대한 통찰력을 제대로 얻을 수 없다면 흉악범을 면담할 의미가 없다’ p. 97의 주장이나 ‘범죄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형선고가 강력범죄자들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사형은 단지 복수를 원하는 희생자의 가족이나 일반 대중을 만족시켜줄 뿐이라는 것이다’ p.434 의 주장은 일맥상통하다. 저자는 그 범죄자들을 면담함으로써 범죄 심리를 이해하고, 자료를 축적하여 더 큰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가 그동안 축적한 자료를 보면 연쇄 살인범(serial killer 이 말은 저자가 처음 쓴 말이란다)은 공통적으로 ‘모두 어린 시적에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p.139 ‘어머니와의 관계는 한결같이 차갑고 냉담함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정상적인 사람들끼리 애정이이나 상호의존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고 배울 여지도 없‘는 어린 시절이 있다. 살인의 양상이 어떠하든 연쇄살인범들의 어린 시절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부모는 가혹하게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양육에 ’일정한 규칙 따윈 없어서 무슨 짓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 p.222고 생각하며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처를 내면에 감추고, 증오와 분노만 키우며 외톨이로 살면서, 환상 속에서만 자신의 분노를 해소한다. 그리고 그 환상이 너무나도 강력해져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채 그 환상을 현실화 하려는 것이다. 끔찍한 폭력의 모습으로.


책은 살인의 현장을 매우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어쩌면 글을 읽고 상상한다는 점에선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 광경들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만큼 매체를 통한 폭력에 노출되고 무감해진 탓일 게다.  이런 책을 난 왜 집어 들었을까?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다가 북트럭에 놓인 이 책에 눈길이 닿은 것이 잘못이다. 제목도 무시무시하고, 내용도, 묘사도 끔찍 그 자체다. 그럼에도 추리소설에 탐닉하듯 책을 대출하고야 말았다. 4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묘사가 반 이상이라 책장 넘기기는 수월하다.

 

내가 범죄심리학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저자를 반박할 근거는 없지만, 그 모든 범죄들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에는 쉬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여자 연쇄살인범은 딱 한 명 보았을 뿐이고, 그런 이유로 여자살인범에게도 같은 심리가 적용되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책을 덮다가 말고 뜬금없이 부모님께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매도 맞고, 욕도 듣고, 때론 내가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원망하던 시절도 있지만, 어쨌건 난 ‘일반인’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증오를 키우며 외톨이로 살고 있지도 않고 말이다. 그런 생각에 맞물려, 내게도 무한책임이 있음을 통감한다. 건강하고 밝고, 행복한 한 인격체를 길러내는 무.한.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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