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자유=민주'라 생각하나 실은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시작에서 경쟁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평등 없는 순수한 자유란 현실 속에선 결국 "다리 밑에서 잠잘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나아가 평등 없는 자유가 보수주의와 결합하여 정치적 자유마저 포기할 때 나치즘과 같은 또 하나의 '멋진 신세계'가 펼쳐진다. 한편, '민주'는 본질적으로 평등의 이념이다. 경제적 평등의 요구가 나아가 자유를 억누르며 관철 될 때 공산주의라는 극단이 성립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고 자유와 민주를 붙여서 말할 때, 이는 위에서 말한 극단을 피하기 위함이리라. 자유와 민주는 서로 보완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두 요소가 다양한 형태로 결합하여 다양한 저치적 스펙트럼을 만들어내야 한다.-97쪽
하지만 '공동체'라는 말 속에 든 반민주적 함의는 어떡하고? 가령 공동체는 동질성을 전제하고, 동질성은 이질적인 것의 배제를 의미하고, 배제는 강제를 내포하고, 강제는 인격적 혹은 비인격적 지배와 폭력을 전제하는 것이다. -115쪽
우연히 어느 잡지에서 변산 생활공동체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지내는 철학자 윤구병 씨의 인터뷰를 읽었다. "땅과 공동체를 살리려고 원시적으로 이 작업을 하는 건 언젠가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가 놓는 징검다리를 통해 그 위기를 벗어나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내가 보기에는 이런게 "탈근대"다. "조상들의 삶에는 쓰레기가 전혀 없었다. 쓰레기가 일절 없는 삶..." 전통은 이렇게 계승하는 거다. 다 낡은 삼강오륜이나 붙잡고 늘어지는게 아니라. 이 탈근대의 실험을 위해 그는 교수직을 내던졌다고 한다. 이게 바로 "탈주"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일상적 어법으로 털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론적으로도 이 교수 출신 촌 농부의 철학이 세련된 불란서제 소리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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