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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ㅣ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그런 장소가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전지전능한 알라의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거기에는 알라의 의지가 미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왜냐 하면 그의 의지 없이는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으니까요. 그러한 곳이 업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그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음은 곧 그의 의지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제한된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이따금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도 완전한 전능함 속에서는 모순이 아닙니다. 악령 이블리스 역시 그에게 속할 수 밖에 없고 그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p. 282 <자유의 감옥>
환상적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 가능하지 않은 건축물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선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어이구, 보르헤스라니...)
동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화를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한정한다면 동화가 아니다. 물론 동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환상과 상상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여덟편의 중단편은 하나같이 독특하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기이한 공간 혹은 건축물에 대한 끝없는 상상이다.
존재하지 않을법한 그림 속의 성(城)을 찾아 일생을 바치는 사람이야기 <긴 여행의 목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존재가 작아져 결코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공간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서로 거울처럼 똑같은 외벽만 존재할 뿐 안쪽의 공간은 없는 집 <교외의 집>, 보기엔 아주 작지만 막상 타보면 여덟 식구 대가족이 넉넉히 탈 수 있고, 심지어 그들의 거주 공간과 차고지마저 싣고 다니는 기이한 차 이야기 <조금 작지만 괜찮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으로 왔는지 과거 기억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미스라임의 동굴>, 유기 생명체처럼 살아 숨시는 '완벽'한 건물들이 존재하는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아무런 조언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만이 '자유롭게' 남아있는 감옥 아닌 감옥 <자유의 감옥>, 진짜 기적의 세계로 통하는 문 <길잡이의 전설>. 이 단편들은 물론 공간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겐 이야기를 끌어가는 그 공간들이 매혹적이었다. 이성과 과학으로는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공간들. 실재한다면 나는 그 공간앞에서 공포에 떨겠지만, 상상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미하엘 엔데의 동화 중 <꿈을 먹는 요정>이란게 있다. 제목만 봐선 얘쁜 꿈을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괴물일것 같지만, 사실은 생긴건 고약스럽지만 악몽을 제일로 맛있어 하는 요정이야기다. 그 책을 보면서도 관념을 뒤집는 상상력에 기쁘게 웃었더랬다. 엔데의 독특한 상상력이다.
말년에 썼다는 이 단편들은 신과 믿음과 존재에 관한 질문으로도 읽힌다. 물론 심각하지 않게, 관념을 뒤집는 상상력으로 그 질문 앞에 서게 한다. 집은? 믿음은? 기적은? 꿈은? 진실은?
하여, 짧은 단편들을 읽어내며 머릿속은 어지럽다.
엔데는 정말 동화작가라고 불러야 마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