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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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은 늘 새롭다. 생에 한 번을 겪든 두 번을 겪든 혹은 열 번을 겪든 사랑은 늘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한다. 사랑은 우리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고, 천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 사랑은 늘 어딘가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그저 그걸 받아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생명의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기 위해 손을 뻗을 용기가 없어서 그걸 피한다면, 우리는 굶주림으로 죽게 될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서야 한다. 비록 그것이 몇 시간, 혹은 며칠, 몇 주에 이르는 실망과 슬픔을 뜻한다 해도.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순간, 사랑 역시 우리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p. 121

 

  

이 소박하고 진부하며(!) 길지 않은 소설의 전부를 저 위의 몇 문장으로 다 말했다고 하면, 내 자만일까. 사랑, 사랑, 사랑. 오로지 사랑을 말하고 있는 소설이다. 난 어째서 이 베스트셀러가 영 읽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맑다고 할 만한  표현들이 곳곳에서 빛나고 있지만, 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 작가에게 영 손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읽다가 팽개치기도 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그랬고, 이 책도 두 번째 도전이다.)

 

서양에선 매우 참신한 발상이었을까? 여신이라는 개념 말이다. 신의 여성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신학생인 '그'의 모습은 놀라운 것일 수도 있겠다. (아, 그러고 보니 소설을 다 읽었는데 주인공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네. 아니, 이름이 어딘가는 나오던가...) 일상의 안주를 좇으며, 신의 존재도 잊고, 그 믿음도 흐려지고, 사랑마저도 믿지 않던 필라가 십여년이 흐른 뒤 다시 찾아온 어릴적 소꼽친구(이며 첫 사랑)를 만나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머리 나쁜 나는 이 소설을 완전히 이해 못했다.

소설의 첫 머리에는 '내가 사랑하던 이를 되찾아 그를 다시 잃은 것은 단지 일주일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p.20)이라고 썼다. 하지만 말미에 두 사람이 손을 맞잡으며 '그래, 우리의 길' (p.283)이라고 말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선다. 즉, 필라는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선택한 남자친구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을 잊으려고 쓰고 또 쓰다가 그가 자신을 찾아와 새로운 희망을 갖는다는 이야기.

 

뭐냐...필라는 믿음도 없다가, 옛 사랑으로 믿음을 찾았고, 또 절망했다가, 역시 그 사랑 덕분에 희망을 갖는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랑의 힘이란다.  소설의 여인은 도대체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여인 아닌가. 수동의 극치다. 신의 은사를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다는 대목은 전세계 소녀들을 열광시켰는지는 몰라도 난 영 찜찜하다. 그러니까 세상은 사랑만 있다면 충만하다는 뜻이더냐. 물론 충만하지. 그렇다고 사랑'만'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

 

나름의 장점과 매력을 지닌 소설인데, 어딘지 내 맘을 개운치 않게 하는것은 난 이미 백살이나 먹어버렸기 때문인가보다. 사랑만을 믿기엔 너무 늙었거나, 혹은 인생이 그렇게 꿈같지도 않다는걸 눈치채 버렸거나, 이젠 소녀취향과는 백만광년 떨어져 버렸다거나. 혹은 인생 그 자체가 삐딱이인 내겐 베스트셀러 따위는 좀 씹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거나.

(이젠 좀 순하게 세상을 받아들이지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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