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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우리 나무
박상진 지음 / 눌와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 도심에서 나고 자란 저는 서른이 넘도록 나무를 구별해 낼 수 없었습니다. 구별해 낼 수 있는 나무 종류가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지요. 그나마도 꽃이 피거나 잎이 무성한 여름 한 철에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같은 단지에 사는 사람들끼리 나무를 공부하는 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거창하게 ‘공부’라고 말하지만 즐겁게 나무를 만져보고 쳐다보고 이해하는 모임이었답니다. 제 눈에는 느티나무와 벚나무는 몇 날이 지나도록 같아 보였고, 오전에 이파리 따가며 배웠던 나무들도 오후만 되면 모두 낯선 나무들이었습니다. 도시내기의 나무공부는 그렇듯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험난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씩 배워가는 즐거움, 무엇보다 그 나무 이름을 알고 구별해 낼 수 있게 되자, 전에는 없던 애정이 솟더군요.
그 행복함 속에서 만난 책이 바로 이 <궁궐의 우리나무>입니다.
색깔 곱고 풍부한 사진 자료는 눈을 즐겁게 했고, 각종 사료에 나오는 나무의 전설과 민담 등은 글 읽는 즐거움을 주었지요. 무엇보다 이 책에 끌린 것은 제게 추억이 얽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궁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기에 소풍도 자주 갔고, 사춘기 시절엔 친구들과 곧잘 궁으로 산책하기도 했던, 제게 궁궐이란 작은 추억들이 얽힌 곳이기도 하니까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의 나무 지도를 보며 옛 추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사실 – 즉 그 곳의 나무들은 그 궁궐의 나이만큼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장소엘 가든 풀과 나무는 그저 풍경으로만 바라보곤 하니까요. 나무를 알게 되고 사랑을 갖고 나니까, 새삼스레 생명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나무를 설명한 도감이나 기행문들은 많지만, 나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책은 흔치 않습니다. 이 책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고) 있노라면, 어서 궁궐로 달려가 지도에 있듯이 그 자리에 느티나무가 있는지 혹은 찔레꽃이 피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사는 곳에서 궁궐은 너무 멀다고요? 나무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 화단에도 뿌리 내리고 있답니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들고 나무를 만져보러 가는 건 어떨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