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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일개 독자에서 애인이 된 남자의 질투심.
33살 더 많은 여자를 향한 끝없는 갈망과 소유욕과 질투와 성숙하지 못한 자아가 얼룩진 글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허구는 거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푹 빠져 있다가 그녀에게 애정을 고백해 버린 필립 빌랭은 자신이 매혹된 이야기 <단순한 열정> 때문에 혼란스럽고 아프기만 한 사랑을 한다. 매순간 질투이고 매순간 이별이면서 또한 집착이던 시간들을 글로 봉인해 버림으로써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를 영원토록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어버렸다. 86쪽의 고백처럼 그는 자신이 그녀의 애인이었음을, 이후에도 영원히 그럴것임을 선언해 버린 꼴이다.
'완전무결한 외설'이라는 일부 평에도 불구하고, 외설적인 묘사는 거의 없으며, 고통스러운 5년의 감정고백이 대부분이다. <단순한 열정>을 그대로 베꼈다는 평은 그래서였을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함에 있어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할지라도) 그녀에게 전 애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것을 이미 알고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것인지 보여준다. 실제로 그녀가 애인을 잊었거나 아니거나, 순간순간 그녀의 행동에서 전 애인의 그림자를 보는것은 고통 그 자체일터. 소유욕만 가지고 있을 때의 화려함과 설렘은 소유하는 순간 빛바래고 만다는 진실과는 별개로, 그 그림자로 인해 소유도 소유가 아닌것이 되므로. 아무리 그녀가 이전의 남자는 모두 잊었다고, 모든 신호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부인한다해도. 그리하여 질투는 더욱 타오르고, 온전히 나만이 것으로 만드려는 소유욕은 더욱 강해진다.
필립 빌랭은 이후로 2권의 소설을 더 썼다고 하나, 이 작품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나보다. 역시 에니 아르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포옹>의 센세이션은 아마도 유명 여작가와의 스캔들을 그대로 폭로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열정>과 나란히 읽어도 필립 빌랭의 그 열정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는 추측키 어렵다. 그저 스무살의 청년이, 여전히 미숙한 자아와 평탄치 못한 가족관계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엉뚱한 곳에서 열정으로 뿜어냈다는 혐의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