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섹스는, 처음으로 내 취향의 진실을 알게 된 섹스였어요. 나보다 체구가 작은 남자였는데...그전까지 난 섹스는 나보다 큰 남자하고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왠지는 모르지만...나보다 작은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 처음으로 남자의 몸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 속의 욕망이 정말로 소란거리기 시작했어요. 구석구석 살펴보고 키스하고 만지고 깨물고 핥고 장난치고 느낄 수 있었어요. 남자의 몸이 전혀 나를 억누르지 않았죠. 그 섹스 이후에야 난 알게 되었어요. 전엔 내가 늘 75퍼센트쯤 강간당하는 섹스를 했었다는 걸요." - 작가의 말 중-작가의말쪽
삶의 적은 삶이고, 무엇보다 현실성이라는 독이다. 하지만 삶이 허용한 것은 독으로 범벅된 현실의 수위 내에서이다. 넘어갈 수 없는 넘어가버려서는 안 되는 저마다의 긴장된 수위...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홍은 안다. 그들은 현실성의 독을 닦고 싶은 거다. 파리 잡기 같은 끈끈한 권태와 불감증과 절망적인 무료함과 생의 공백을 소독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극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의 현실성에 맞먹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도모하는 것. 낯선 여자와 색다른 섹스를 하는 것. -85쪽
가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사 노동이 밴, 아무렇지도 않은 손등과 조금식 휜 손가락과 영양이 불균형해 보이는 짤막한 손톱, 딱딱한 손바닥.
'여자가 여자가 아니면, 그럼 뭐죠?'
'그냥 사람인 거죠.'
미장원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요. 냉소적인 남자들이 말하는 식이군요.'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여자와 남자와 아줌마. -127-128쪽
그리움과 고통, 흥분과 공포가 차례차례 자리를 바꾸었다. 어차피 섹스란 인교에게 논리적이지 않은 행위이다. 실재와 환상의 결합, 실재가 환상에 복무하고 환상이 실재에 복무하는. 그러나 환상이 실재가 되는 순간 육체는 게임 오버를 맞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정신의 와해... 나는 왜 이리도 위험한 유희의 궤적에 빠졌을까? -18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