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ㅣ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나도 안녕이라고 말하진 않겠어.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자고. 그때까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잔뜩 찾아 놓을 테니까. 찾지 못했을 땐 꾸며 내면 된다. 내 거짓말이 그럴듯하다는 건,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잘 알고 있을 테지? '선샤인 거리의 내전' 377-378쪽
B스러운 저 표지에 끌려서 서점에서 앞 페이지를 읽으며 살까말까 망설였던 책이다.
행운으로 받은 이 책은 망설이지 않고 샀어도 그다지 후회하지 않았을만큼 재밌었다. 특히나 추리소설로서 훌륭하다. 긴박감도 있고, 반전도 있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있다. 10대들의 좌충우돌 거리이야기. 매력적이다. 하지만 매력적이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일까?
나는 읽는 내내 가네시로 카즈키의 '좀비스'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만 좀비스는 좀더 순진하고 투박하다. 좀비스 패거리들은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가르는, 자기인식 비슷한 것이 느껴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것에 비해 마코토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선 그런 느낌이 없다. 장르의 특징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는것일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전혀 모르니 내겐 의미없는 의문이다.
이케부쿠로 서구 공원은 10대들의 거리이고, 그 거리는 어쨋거나 10대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코토. 그것이 '당연한' 거리이므로, 마코토가 움직일 때는 오로지 그 거리를 지켜야 할 때다. 하지만 그 거리를 장악한 것은 어쩌면 패거리들. G보이스도, R엔젤스도 모두 소년갱단. 그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점 말고는 어른들의 야쿠자와 다르지 않다. 내 눈엔 그렇다. 그들은 물론 어른에게 일갈한다. "꼬마들에겐 본받을 만한 모델이 없어요. 가까운 주변에는 목표로 삼을 만한 어른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모델가 끈끈한 유대 관계가 있어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충만감, 동료들에게 환대받는 기쁨. 규율과 훈련. 지금의 사회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힘을 합쳐 찾아낸 겁니다." (선샤인 거리의 내전 271쪽)
하지만, 술집을 접수하고, 급할땐 무기도 휘두르고, 조직이 있고, 무서운 위계가 있는 그 곳. 그래서 어느 장면에선 전혀 10대스럽지 않은 이야기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주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느끼지도 않는 청년들이다. '아니 10대라고 늘 성장만 하냐? 10대라고 늘 현실을 뒤집을 꿈만 꾸는거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거리의 룰에 너무 빨리 적응해버린, 어쩌면 너무 빨리 늙어버린것 같아서 아쉬웠을 뿐이다. (그래, 내가 늙고보니 그렇게 일찍 늙는 젊음이 안타까운거다)
하지만 책이란거, 게다가 소설이라는거 재미있으면 최고. 그 이야기가 '다 뻥이지?'라고 느껴지지 않고 '그래 저기 어디선가는 이런 일들이 있을거야'라고 느껴지면 금상첨화 아닐까? 이케부쿠로의 마코토 패거리 이야기는 재미있고, 기꺼이 추천할만하다. 문장도 좋다. 드문드문 책 귀퉁이를 접기도 했다.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았다는 띠지는 '오버'로 보이지 않는다. 탄력있는 이야기에 문득문득 지나치듯 '요즘 애들은 무섭군. 대체 이거리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는거야.'(익사이터블 보이 121쪽) 이라는둥, '그녀가 엉덩뼈 옆을 탁탁 치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의 생산 설비와 판매 루트에 대해 새악했다. 역시 자본주의는 희한하다. 아니 희한한 것은 그녀의 항문을 사러 오는 남자들인지도 모른다.' (오아시스의 연인 180쪽)라는 둥의 말을 흘려 넣는 솜씨도 꽤나 매끄럽다. 수록된 네 편 중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와 '익사이터블 보이'는 단연 훌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