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
정연식 지음 / 청년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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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나폴레옹, 진시황, 세종대왕, 퇴계 이황 등 영웅을 중심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간 대부분은 지나가는 여인 1, 2, 짐꾼1, 2 등의 엑스트라이다. 이 대부분의 엑스트라의 삶과 문화가 내가 알고 싶은 역사가 아닐까? 역사가 만약 4.19, 5.16, 12.12 이런 식의 숫자와 대통령들의 업적이 중심이라면 딱히 역사 속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느낌도 덜할거다.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는 조선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저자의 말처럼 “민란이 일어났을 때 모든 민중이 혁명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며, 전란이 터졌을 때 온 백성이 나라를 구하려고 고군분투했던 것도 아니다.”

조선 여인들의 평생 소원은 쌍가마(말이 앞 뒤에서 끄는 가마)를 타보는 것이었으며 가마꾼의 숫자와 가마의 모양에 따라 신분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늘날 6기통, 8기통, 몇 cc하는 식이다. 자동차의 배기량과 브랜드로 ‘가오’를 내고 싶은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중과 절을 다 때려 잡았을 것 같지만 공자님이 말씀해 주지 않는 내세가 두렵거나 궁중의 왕자의 탄생을 기원하거나 누가 아플 때 왕실은 부처님을 찾았다. 필요할 때만 교회에 가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비디오 시작하기 전 불법 복제를 반대하는 광고문 중 “옛날에는 호환, 마마가 무서웠다.”가 있는데 마마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고 많이 걸렸던 병으로 정약용은 아들 넷을 마마로 잃었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보내주겠다던 소라껍데기를 기다리다가 아이가 끝내 마마로 죽은 뒤 소라껍데기 2개가 도착했는데 그 어린 아이가 죽으면서 한 말 “엄마! 아빠가 돌아오셨더라도 발진이 돋았을까?” 그 자신 뛰어난 의학자이면서 사랑스런 아들의 죽음을 유배지에서 들을 수 밖에 없는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거다.

당연히 관복은 유니폼처럼 나라에서 제공하는 줄 알았는데 각자 준비를 해야했단다. 또 과거에 합격하면 한 턱내라고 선배들이 들이닥치는데 대접이 시원치 않으면 행패를 부렸단다. 하긴 신입사원이 되면 안 입던 양복도 사입고 주변 사람들한테 한 턱 내느라 몇 달은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살기도 하니 뭐 돈 벌기 전에 돈 들어가는 건 진리인가부다. 또 술을 무리하게 먹이거나 모욕을 주는 짖궂은 행동을 하는 등 신참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루었다고 한다. 매년 3월이면 대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은 그 역사가 오래된 모양이다.

율곡 이이가 상소까지 해가면서 이런 관행을 뿌리 뽑으려 했으나 이이가 자리에 있을 때 그것도 관할 부서인 병조에만 잠깐 이 관행이 금지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사약이 여태 죽는(死) 약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임금께서 내리신(賜) 약이었다. 이 밖에 얼굴 등에 그 죄를 문신으로 새기는 일종의 주홍글씨 묵형, 참혹하기만 한 태형, 곤장형, 교수형, 참형 등.. 형장의 풍경은 끔찍하기만 하다.

물론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옛 문헌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백여권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읽고 이를 영웅 중심이 아닌 무지랭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으로 재구성했다. 일테면 추사 김정희의 초상화와 백범 김구의 사진 속에서 곰보 자국을 발견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와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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