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평점 :
이 둘은 마치 신이 선택한 마지막 인류 같다. 자신들만의 방주 안에서 잔뜩 웅크리고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간다. 신도 어쩔 수 없었다. 신이 허락하기 전에 모두를 죽여 버렸으니까. 사실 신도 그런 적이 있지 않은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노아만을 남기고 큰물로 싹 쓸어버리셨지.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엄청난 살육을 저질러 놓고도 ‘도대체 왜?’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무차별 살육은 측정할 수 없는 공포를 조장한다. 메리캣은 어느 날 가족들과의 식사에서 그저 설탕단지에 독을 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언가 치밀한 계획을 짠 것도 아니고,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도대체 메리캣이 왜 그랬는지를 알 수가 없다. 단지 메리캣이 그날 근신중이었다는 메마른 단서 하나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실제 메리캣의 나이가 열여덟임에도 읽는 내내 그저 12살 정도의 철없는 소녀로 인식되는 것은 우리가 그 소녀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한 장치다. 거기다 동생만큼 속을 알 수 없는 순도 100% 백치미의 아름다운 언니 콘스턴스의 묘한 존재감은 이 고딕물의 매력을 한껏 고조시킨다.
그리고 둘은 끊임없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마치 무언가를 위한(무엇을 위해서일까?) 주문처럼 반복되는 ‘사랑해’는 이 둘이 신이 선택한 마지막 인류로서 서로를 꼭 사랑해야만 하는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의 판단일 뿐.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봤는지 모른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우리 정말정말 행복하다.”
덧1. 읽기 전에 이 책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72쪽 ~ 87쪽을 한번 읽어보시길! 아름답다.
덧2. 약간 분위기가 다르지만 대량살육이란 의미에서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와 같이 읽어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