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의식의 소음 마이크로 인문학 1
김종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01 우리 둘을 생각하다 : 나의 수많은 편지가 너에게는 얼마나 시끄러운 소음이었을지. 나 같은 게 널 좋아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열렬히 말고 조금만 좋아했었다면 너의 10대는 푸른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처럼 자유로웠을 텐데.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너 없는 내 10대가 너무 무서웠다. 30대가 된 지금도 나는 지금도 가끔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분노에 가득 찬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담고 돌아서던 너의 뒷모습을 반추한다. 지금까지 내 고질병이 되어 버린 지독한 두통의 시작이었다.

02 동경했던 때를 생각하다 : 20대는 초반은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 누군가를 지독히 동경하고 그것을 사랑이라 믿으며 혼자 애태우는 거. 어디서 당신이 나타날까 기대에 차서 두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거. 젊음의 치기는 나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 24시간 작동하는 당신에 대한 생각 모드! 망상 모드! 생각이 생각을 낳는 뫼비우스의 소음. 나만 들었겠지? 제발 그랬기를.

03 우울이 우울을 생각하다 : 생각이 생각을 재생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울증이다. 편리하다. 모든 것을 우울증 탓으로 돌리면 내가 폭식하는 것도, 그러다 며칠을 굶는 것도, 잠만 자는 것도,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모두 다 너무 편해진다. 대신, 아무리 생각을 구토질 해도 마음의 어둠 속에서는 꾸역꾸역 도무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삐뚤빼뚤하게 비집고 나온다. 넌 틀렸어. 넌 아니야. 넌 몰라. 넌 못났어. 넌 못해. 사방에서 들리는 이 생각의 소음을 견디다 못해 저 너머를 생각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 이쯤 되니 꽤 억울하다.

이렇게 과거나 곱씹으며 30분 넘게 리뷰를 쓰고 있다니.

저자는 생각이 많다는 것은 잘못 사는 것이라 했다.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을 생각의 무대에서 재상연하지 말라고 했다. 과거의 유령들이 현재 나의 공간을 가득 채우도록 방치하는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잠이 안 오는구나. 유령들이 내 주위를 온통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내가 무슨 수로 꿀 같은 잠에 빠질 수 있겠는가. 오늘 밤도 어김없이 유령은 그 차가운 손을 내 이마에 올려놓겠지.

그래. 잠이 안 온다면 이 책을 뒤에서부터 다시 읽자. 저자의 꽤 단호한 문장들은 당신을 잠시나마 피신시킬 것이다. 거기다 여러 분야의 풍부한 인용은 딱딱한 인문서를 벗어나 무척 흥미롭게 읽힌다. 다만 “생각하기가 아니라 지각하라”는 말은 여러 가지 다양한 설명에도 잘 이해되지 않아 스스로에게 좀 아쉽다. 음...다시 읽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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