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부클래식 Boo Classics 21
케이트 쇼팬 지음, 홍덕선.강하나 옮김 / 부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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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영혼이 잠들었다.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하고 길에서 자꾸 넘어졌다. 여기 저기 멍이 들었다. 나는 자꾸 길에서 헤매었다. 급히 걷다가도 ‘여기가 어디지?’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상점가는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고 묘하게 무거웠다. 가로등은 졸린 듯 깜빡이다 꺼져 버렸다. 달빛만이 길 위를 비추고 밤인데도 내 그림자는 길게 뻗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나는 전혀 떨리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잠들었던 것이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너무나.                                고독했다. 

 

19세기의 여자들은 모두 이런 고독을 품고 있었을까. 물론 전부는 아닐 것이다. 래티뇰 부인은 그런 면에서 현명했다. 아마 그 시대가 원하는(혹은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 일 것이다. 남편과의 대화를 티나지 않게 조율하고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고(거기다 넷째를 임신 중이다. 이 시대에는 다산이 행복의 척도로 간주되고는 한다) 에드나에게 빠져드는 로버트에게 넌지시 경고를 주기도 하고 일탈을 꿈꾸는 에드나에게 조용히 충고하기도 한다.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그에 비해 아이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집안일은 돌보지도 않는 주인공인 에드나의 태도는 불편하다. 우리는 래티뇰 부인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래티뇰 부인 같은 태도가 우리가 여자를 보는 관점에서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눈을 번쩍 뜨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익숙한 것에 편안히 몸을 묻을 것인가, 영혼이 눈을 뜨고 담장 저 너머를 볼 것인가. 절대 어느 한 쪽이 옳은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잠들어 있으면 잠든 대로, 깨어 있으면 깨어 있는 대로 인간은 어느 한 쪽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든 불행을 느끼든. 참으로 사랑스러우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의외로 괜찮은 소설이었다.  

 

아직도 거리는 어둑어둑하고 가로등은 켜지지 않았다. 내 영혼은 아직 잠이 든 채다. 무엇이 내 영혼을 깨울 수 있을까? 사랑? 일? 사회적 지위? 돈? 결국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 단지 지금의 나는 고독에 뼈가 시리다는 걸, 어떤 바람에도 몸이 떨리지 않는 다는 것에 가만히 고개를 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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