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시리즈 : 사사(師事)
우니 지음, 김봄 옮김 / 길찾기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괴담 기담 강화기간이 한창이라 읽은 한 권.

나는 요즘 젊은이들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라든가 그런 거 잘 못 빠져드는 편이라, 이 <스승 시리즈>가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넷상에 나도는 건 한 편도 읽어본 적 없다.

후타바 공포판에서 무려 2003년부터 연재하던 소설 모음집이라고 한다. 시코쿠 시골에서 지방 도시 대학으로 상경한, 약간 영감이 있는 남학생 ‘우니‘가 수수께끼 투성이의 대학원생을 만나 그를 오컬트 방면의 ‘스승‘으로 삼고 일어나는 이야기.

특징이라면 실화괴담조로 시작하다가 무언가 장대한 오컬트 SF쪽으로 향해간다는 것 같다. 이 종이책 1권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장대한 이야기는 안 나오는 것 같지만...

길고 짧은 에피소드들이 엮여 있으며, ˝내가 ~때 겪은 일이다˝ 등등 체험담의 정형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에피소드 전개에 시계열을 따르지 않는다. 이 1권 초중반부에 스승과의 만남 에피소드와 스승이 갑자기 실종되는 ‘결말‘의 에피소드가 배치되어 있을 정도다.

아하! 읽어 보니 이거 ‘사운드 호라이즌 식‘의 이야기였구나!

사운드 호라이즌 식의 이야기란 나 혼자 쓰는 용어이기에 설명이 필요하다. ‘사운드 호라이즌‘이라는 밴드가 있다. 보통의 노랫말은 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밴드는 단편 내지 장편소설 규모의 스토리성이 엄청나게 강한 악곡을 만든다.

그런데 음악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음악 하나를 들었을 때 충분히 소화되지 않는다. 뜬금없이 특정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다거나(그 특정 상황이 뭔지는 제시되지 않는다), 시간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거나, 전의 노래에 나왔던 것과 같은 인물인 것 같은데 치명적인 모순이 있어서 노랫말로만은 해소가 되지 않는다거나.

가사뿐 아니라 앨범 재킷, 가사집의 디자인, 악곡 배열 순서, 효과음 등등 음반 매체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이야기‘의 힌트로 삼는다. 모든 힌트를 총동원하고 퍼즐을 맞춰야만 이야기의 총체(사운드 호라이즌의 세계)가 살짝 보일락말락하는 스타일이다.

사운드 호라이즌의 방식과 <스승 시리즈>의 작법은 약간 다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 그런 거‘로 퉁쳐서 이해하고 있다.

이 1권을 다 읽고 이 권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니, 미처 눈치채지도 못했던 복선들이 아무렇게나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궁금해하는 점은 아무래도 현재까지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ㅠㅠ

덧붙여 내가 ‘사운드 호라이즌 식‘이라 부르는 작법의 선구자는 의외로 무라카미 하루키인 듯하다. 1980년대부터 ‘퍼즐식 작법‘을 실천한 작가가 바로 하루키. 이 이야기는 사이토 미나코의 책 <문단 아이돌론>에서 등장한다. 후에 이 책의 감상을 쓸 때 자세히 써야지.

<스승 시리즈> 1권에 대해 감상을 덧붙이자면,

‘스승‘이 너무 섹시하다!

처음엔 ˝흐음~?˝하고 읽었는데 어느새 빠져들었다. 속을 알 수 없고 뭔가 자포자기적이고 나중에는 미쳐버리는 점이 좋다. 헌팅도 제법 하는 거 같으니 외모도 괜찮겠고. 제일 좋은 건 의지가 되지만 무턱대고 강한 먼치킨이 아니라는 점. 마성의 남자. 진짜 개섹시함. 근데 얘 이름이 뭐죠.

그리고 우리말판 오역이 약간씩 있는 거 같다! 이건 중요한 거라서 두 번 강조한다. 오역 있다.

단 일본어판 원문으로 대조해본 건 아니다. 넷상에 나도는 일반 유저 번역과 일본어 웹 검색 같은 자료로 판단한 거라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

1) 인명 표기 중 ‘쿠라키노 아야‘가 <쿠라키 아야>(101쪽), <쿠라노키 아야>(364쪽)로 등장할 때마다 오역되었다... 이거 꽤 중요한 인명 같은데 안습.

2) 단편 <소면 이야기> 중 스승의 대사가 오역인 거 같다.

˝귀신밖에 안 보여˝(101쪽)은, 향후의 전개로 볼 때 ˝귀신밖에 안 볼 거야˝의 오역. 저 대사가 상당히 중대한 복선인 것 같다. 하지만 번역판은 거의 반대의 뜻으로 해놨다.

이 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실종>편에서 스승이 보였던 기묘한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다.

이 밖에, <소면 이야기>를 경계로 스승과 나의 일인칭이 서로 바뀐 것(‘오레‘와 ‘보쿠‘)도 번역판에서는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일단 이정도인데, 읽으면서 ˝어 이거, 번역의 상태가...?˝라고 갸우뚱했던 게 몇 가지 더 있었다. 근데 기억이 안 난다... 적어둘 걸 그랬나.

여하튼간에 스승 섹시하다.

2권 빨리 번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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