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죽재전보 클래식그림씨리즈 4
호정언 지음, 김상환 옮김, 윤철규 해설 / 그림씨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씨에서 출판한 이번 책 <십죽재전보> 
평소 잘 접하던 분야가 아니라 약간 망설이긴 했지만, 명나라 말의 인쇄기법에 대해 알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만나게 된 책.  처음 책을 받았을때는 책을 한장한장 넘기는 것조차 얼마나 조심스럽던지. 이 책은 일단 보통책에서 자주 보기 힘든 누드제본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전에 제본작업을 알아보다 이 누드제본 형태를 알게되고 제작 문의를 했을때 이 형태의 제작은 보통 제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림씨에서 이 책을 특별히 누드제본 형태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보고 나니 내용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오래 두고 펼쳐보면서 끝부분이 닳아도 그 것만의 멋이 살아날 것 같은 귀하고 공들인 제본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시를 쓰기 위해 작은 종이를 물들이거나 문양을 찍는 등의 장식을 곁들인 것을 시전지라고 했고, 여러 시전지를 한데 묶은 것을 '보(譜)'라 하여 십죽재전보가 탄생했다. 중국에서 시전지의 역사는 9세기 전반부터로 매우 오래 되었는데 가장 정교하고 출판 인쇄 기법 상으로도 탁월했던 것이 명나라 말에 나온 십죽재전보의 시전지라고 한다. 책의 첫 시작에서 이 대목을 읽고는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던지.  

138페이지의 그림은 작은 잎이 무수히 모여 있는 국화 꽃잎을 공화기법과 색이 옅게 줄어드는 두판기법을 동시에 사용해 묘사했다고 한다. 얼마나 자세히 보고 또 보았던지. 공화기법을 통해 국화 꽃잎에서 입체감을 표현하고 두판기법으로 색이 옅어지는 효과를 보태어 정말 멋진 그림을 완성시켰다. 이 책에서 제일 긴 시간 들여다 본 페이지였던 것 같다.

사실 이 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귀하고 멋진 작품을 이토록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다. 편지지, 엽서 등을 자주 사용하고 또 그런것들을 만들고 작업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인쇄기법에 요즘 특히 흥미가 많이 생긴 찰나에 이 책의 출간소식은 더 없이 기뻤다. 그 기쁨과 기대감에 조금의 실망감도 들지 않겠금 책은 충분히 좋았다. 이렇게 예쁜 그림에 어찌 아까워 편지를, 시를 썼을까 싶을정도로 좋은 그림들이 많았다. 


날도 선선해지고, 편지로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올 가을에는 조금 더 다채로운 색의 종이를 꾸미고 만들어
긴 마음의 글씨를 곱게 담아보내야겠다. 나만의 시전지를 만들어서.  

 

 

 

 

두판기법은 빨강, 노랑, 파랑 등 주요색으로 판을 나눴다. 뿐만 아니라 색이 엷고 짙게 변하는 이른바 그러데이션 효롸를 위해서도 별도의 판을 제작했다. 이렇게 많은 판을 같은 위치에서 여러 번 찍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술이 필수적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연구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두판이라는 명칭도 각 색깔별로 새긴 목판들이 많아서 마치 "제사 때 음식 접시를 잔뜩 벌여 놓은 모습과 같아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한때 다른 업자가 호정언의 목판을 훔치러 왔다가 목판 판수가 많은 것을 보고서 훔쳐 가도 작업하기 힘들 것을 깨닫고 훔치지를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 18

공화기법은 문양을 새긴 목판에 아무런 색도 칠하지 않고 마련(목판 인쇄에서, 판목에 먹을 칠해서 종이를 덮고 그 위를 문지르는 도구로 바렌을 말함)으로 문질러 종이에 돋음 문양이 새겨지도록 하는 수법이다. 이는 고대부터 존재했으나 그동안 잊혀 오다가 이 때 다시 부활했다. - 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