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평생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
산 첩첩 천 봉 만 길에
길 층층 열 걸음에 아홉 번은 쉬네.

 

 

 

맷돌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노인이 스스로 놀리다

 

여든 나이에다 또 네 살을 더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신선은 더욱 아닐세.
다리에 근력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에도 정기가 없어 앉았다 하면 조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두가 망령인데
한 줄기 숨소리가 목숨을 이어가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이 아득키만 한데
이따금 황정경 내경편을 읽어보네.

 

 

 

늙은이가 읊다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이라고 한 요 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 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 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스스로 읊다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안락성을 지나며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야박한 풍속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 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죽 한 그릇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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