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2, 4, 6, 8, 10,

1) 2, 4, 6, 8, 10, 12, 14, 16, 18, 20

2) 2, 4, 6, 8, 10, 14, 18, 22, 26, 30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이 2, 4, 6, 8, 10의 숫자의 수열을 보고 다음에 올 숫자를 고르라고 하면, 1번의 답을 고를 것이다.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배웠으면 공차가 2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2번의 답을 골라도 답은 틀리지 않는다. 앞서서 2를 5번 더하는 규칙다음에, 다음 규칙으로는 4를 다섯 번 더하는 규칙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1번의 답을 강요할 것이다. 과학적 사고는 두 가지의 답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사고의 전환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과학의 패러다임은 두 가지로 정의된다. 첫 번째로 기존의 과학의 체계가 변환되어 이전의 믿었던 법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의로 정상과학의 궤도가 설정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생각 혹은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의미는 매우 다르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을 기존의 있던 정상과학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상과학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쿤은 일반화 되어있던 법칙을 쉽게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이중적인 것 같다. 칼 포퍼는 이러한 토마스 쿤의 태도를 비판했는데, 비판이 이해가 간다.
칼 포퍼는 반증주의자로서 자신이 선호하는 이론이라도 실험과 관측에 어긋날 경우 단호하게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반증주의는 토마스 쿤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비판했다. 쿤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맞추어서 조금씩 수정되면서 과학이 나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기존의 것을 버려야한다면, 버려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없었더라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 시대는 천동설이 정상과학이었고, 종교적인 이유와 함께 그러한 사실이 묵살 당하였기 때문이다. 후대 과학자 갈릴레이와 케플러같은 사람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동설은 끝내 빛을 바라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상과학에서 어긋나면, 무조건 폐기되어야 하는가? 물론 기존의 정상과학이 틀릴 수도 있다. 당시 과학기술의 수준의 실험과 관측으로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하기에는 옳지 않은 것 같다. 뉴턴의 역학법칙도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이, 한순간 무너진 적이 있었다. 이론과 실재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실생활에 적용해왔던 법칙을 한순간 폐기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험은 매우 크다. 뉴턴의 역학법칙은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하는데 적용되지 않았다. 여기서 임시방편적 가설이 나왔는데, 그 가설을 이용하여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해냈다. 그러나, 해왕성을 발견하고 나서, 뉴턴의 역학법칙이 적용이 됐는데, 다시 뉴턴의 패러다임이 되살아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법칙을 한순간 무너뜨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만약에 천왕성의 궤도계산에 뉴턴의 법칙이 적용이 안 됐다고 해서, 뉴턴의 법칙을 폐기했다면 해왕성을 발견하는 것이 늦추어 졌을지도 모른다.
과학은 귀납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귀납의 문제를 제대로 파헤친 것이 블랙스완이론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백조를 하얗다고 여긴다. 하지만, 검은 백조가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세상의 모든 백조가 하얗다‘라는 명제를 ’대부분의 백조는 하얗다’라는 식으로 고쳐야할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믿는 영역에서, 아직도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존의 과학체계도 그렇다. 만약에 새로운 것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이, 법칙으로 구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유지되다가 반증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하기에는 위험이 크지만, 버려야할 것을 버리는 것도 맞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의 법칙이 아니라 다양하게 예외로 두어서 적용한다면, 우리는 상대주의라는 감옥에 시달릴 것이다.
항상 맞는 체계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준은 법체계 안에서의 자유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도덕과 양심의 영역도 있다. 우리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동시에 법을 어기지 않으면, 비난을 받지만 형벌을 받지 않는다. 도덕과 양심의 영역은 상대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법은 절대적으로 적용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절대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법칙을 무조건 신봉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과연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이란 분야는 참 난해한 것 같다.
저자는 우리가 ‘혁명’이 아니라 ‘진보’를 통해서 과학이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혁명이 이루어지게 되면, 기존의 이론 체계는 모두 폐기처분되어 버린다. 하지만 진보되어 나간다면, 기존의 이론 체계를 흡수하는 동시에, 새로운 체계가 세워져서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예로 플로지스톤 이론을 들었는데, 화학의 혁명을 일으킨 라부아지에와 프리스틀리의 플로지스톤 이론이 맞붙어서 라부아지에가 승리를 거두고 만다. 만약에 라부아지에의 이론뿐만 아니라, 프리스틀리의 이론을 어느 정도 참고하면서 화학이 발전해 나갔더라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쿤은 일원주의적 사고로 패러다임의 독점설을 내세웠다. 정상과학상태에서는 각 과학 분야에서 패러다임이 한 개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패러다임을 일원화하려고 경쟁하지 않아도, 정상과학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패러다임의 일원화를 이끌기 위해서, 과학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경쟁 패러다임이 아닌, 다원주의적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에서 태양계까지의 규모는 뉴턴역학을 사용하고, 규모가 아주 작아지면 양자역학을 적용하며, 규모가 매우 커지면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하며, 속도가 빨라지면 특수상대론을 사용한다고 한다. 물론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잘 세우게 되면, 필요한 모든 내용을 표현할 수 있지만, 다루는 대상이 복잡해질 때 계산이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효율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법칙이 조금 어긋난다고 해서 그 법칙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원주의적인 사고를 갖추어야 한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물리와 화학의 과학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되어 있는데, 지구과학과 생물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 같다. 화학분야는 정말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물리는 그렇지 못하다. 저자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다음 책에서는 다른 분야에서도 흥미롭게 설명해주셨으면 한다.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20893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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