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가장자리에서 -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 세계문학을 둘러싼 대논쟁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6
김경연.김용규 엮음 / 현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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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가장자리에서

 

세계문학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문학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세계시장에 대한 확대도 있겠지만, 출판시장에서 모두가 앞 다투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세계문학 전집 시장을 보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성공으로 인해, 다른 출판사들도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는 형국이다. 세계문학 전집의 대표주자로 민음사가 있지만, 그 뒤로 문학동네, 열린책들, 을유문화사, 웅진(펭귄클래식), 문예출판사, 시공사, 창비, 대산세계문학총서 등, 내가 아는 출판사를 제외하고도 수십 종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문학전집을 왜 이렇게 출판시장에서 서로 출간하려고 하는지에 생각해보니, 우선 작가에 대한 인세가 들지 않고, 좋은 번역자만 있으면, 출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말소되기 때문에, 출판사 재량으로 책을 번역해서 출간할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활용하여, 많은 출판사들이, 국내외의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우리가 고전이라고 알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출간하는데 집중하는 것 같다.

 

물론 개인이 외국어 능력이 출중하면,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라는 사이트에서 영문 원본을 구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지 않기에, 좋은 번역본을 보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이 책은 3부작으로 되어있다. 세계문학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1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주제의 2부, 아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문학론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은 괴테인데, 그러한 세계문학론을 발전시킨 내용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우선 1부에서는 세계문학이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19세기~20세기에만 해도, 세계라는 지역이 사실, 서구유럽과 미국에 한정되어 있던 것 같다. 제국주의적 패권다툼과 식민지 개척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식민지였고, 세계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서구유렵과 미국밖에 없었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난민이란, 국민의 권리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 난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식민지 국가에서, 세계문학적 헤게모니를 장악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서양에 대한 동양에 잘못된 인식, 오리엔탈리즘적인 인식을 깨부수기엔 아직 부족한 것일까? 세계문학전집이라고 만든 출간작품들 중에 한국문학작품이 안 들어간 출판사들이 많다.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에 넣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계문학전집의 개념을 외국문학전집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한국문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데,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1부에서 제시하는 문제점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구 유럽의 문학의 기득권은, 남미 문학, 아시아 문학, 아프리카 문학의 발전으로 인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도, 세계문학의 가치를 인정하게 해준 작가를 루쉰으로 꼽는다. 유럽에서 루쉰의 책들이 번역되고 읽히게 되자, 유럽중심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를 버리자고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현재, 노벨문학상도 서구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남미 지역 등에서 나오고 있으니, 세계문학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2부에서 제시하는 문제점은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많이 든다. 한국문학이 더욱 더 발전하려면, 외국에서도 읽어야 하는데, 한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한국작품이 외국문학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스타 작가들의 선전이 보이긴 하나,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로 코엘료, 알랭 드 보통 등, 한국에서 잘나가는 작가들이 책을 출간하면, 여지없이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내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 시장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님들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의 2부에서 보면, 한국문학과 무라카미 하루키와 세계문학이라는 주제의 글이 나온다. 이 주제에서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하루키를 언급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기존의 한국의 작가들이 하루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아서, 신인 작가들조차 하루키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적 문학세계를 비판하기에는, 하루키가 이루어낸 것이 너무 많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직전에 상인, 카프카상, 예루살렘상을 수상했고, 작품을 내면, 세계문학시장의 대부분을 휩쓴다.

 

로쟈 이현우님은 세계문학을 네 가지 범주로 정의했다. 나 역시도 이 범주가 어느정도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첫째, 세계 각국의 문학을 한국문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의미, 즉 ‘해외 문학’ ‘외국문학’으로서의 세계문학, 둘째,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에게 읽히는 문학으로서의 세계명작 혹은 고전을 뜻하는 세계문학, 셋째, 개별 국가의 국민문학(민족문학)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추구한 문학, 곧 괴테가 정의한 ‘세계문학’,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유형의 세계문학, 즉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문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가리키는 세계문학이다. 하루키가 인정받은 부분은 셋째와 넷째의 범주라고 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이르고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있으며, 그러한 보편적인 문학적 가치를 세계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여 인정받았다. 이런데도 단순히 하루키를 비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한국문학이 발전하려면,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는 독자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한국문학이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3부에서 나오는 동아시아와 세계문학에 대해서는 식민지 국가의 비참함을 들어낸다. 서발턴이라 불리는 여성들의 비참한 참상과 식민지배 시절에 받았던 고통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단순히 문학이란 작품을 읽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에도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3부에 나오는 제3세계 페미니즘과 서발턴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변영주 감독이 만든 나눔의집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나온다. 이 영화는 강제 종군위안부에 대한 실상과 할머니들이 평생 고통받아온 역사에 대해 그린다. 이 영화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3부에서 세계문학의 의의는 전 지구적 공동체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세계문학의 자본주의적 시장 확대뿐만 아니라 인류애의 가치도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8205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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