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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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그가 살인자일리 없어...>

 

그래서 난 당신을 사랑하오.

좋아요 하지만 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하게 될거요.

 

 

 

(줄거리)

소설은 여주인공인 사튀르닌이, 집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초호화 호텔 스위트룸 부럽지 않은 규모에, 비용까지 저렴한 방을 15명의 지원자를 재치고, 남주인공인 엘레미리오에게 단번에 뽑힌다.

 


좋은 집을 얻게 된 사튀르닌은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다. 지원자들이 하는 얘기에 마음이 뒤숭숭해졌기 때문이다. 15명의 지원자들 중에 실제로 집을 구하기 위해 온 사람은 없고, 절대로 외출을 하지 않는 돈 엘레미리오라는 작자가 궁금해서 찾아왔으며, 심지어 이 집에 세 들어 살았던 8명의 여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를 들어 살게 되는데, 엘레미리오는 절대로 암실로 들어가지 말 것이라는 금기를 둔다. 이미 지원자들의 얘기를 들은 사튀르닌의 눈에는 엘레미리오가 살인자로 보이며, 금기를 듣게 되자 더욱 의심이 증폭된다.

 


의심반걱정반으로 돈 엘레미리오와의 생활이 시작되고, 시작되자마자 돈 엘레미리오는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과 끊임없는 물질적인 공세와 의외의 섬세함에 사튀르닌은 사랑 앞에서 흔들리게 되고, 엘레미리오가 살인자인지 아닌지 추적하게 되는데...


(감상평)

문학에서 금기의 모티프는 항상 비극을 의미한다. 지옥에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려오려 했으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아내를 데려오지 못한 오르페우스나, 제우스의 금기를 어기고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처럼, 결국 사튀르닌도 암실에 들어가서 비극을 맞게 될 것인가 추측했다.

 


계속해서 소설을 읽어가면서, 나도 사튀르닌처럼 돈 엘레미리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날리게 되면서도,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대한 편견과 자신의 오만으로 한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까봐 사튀르닌의 시각이 아닌 제3자의 시각으로 소설을 읽어갔다.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의 전개는 나의 상상을 뛰어 넘었다. 사튀르닌이 금기를 깨뜨려서, 비극을 맞게 되거나, 엘레미리오가 살인자가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멜리 노통브는 금기의 모티프자체를 변형시켜 버렸다.

 


왜 항상 금기를 지켜야 하는 자가 금기를 깨뜨려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 금기를 설정한 자가 깨뜨릴 수는 없는 것인가라는 이러한 설정에 소설의 전개는 극에 달하고, 돈 엘레미리오는 자신이 설정한 금기를 깨뜨리고 만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컷으로 담아 보려는 욕망은 사랑 앞에서 무너지고, 자신의 덫에 자신이 걸리고 만다.

 


소설에서 금과 노란색의 묘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돈 엘레미리오는 이러한 금과 노란색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러한 모습에 절대로 당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사튀르닌은 돈 엘레미리오를 비판한다. 하지만, 사튀르닌은 최고급 샴페인과 호화로운 음식 등 돈 엘레미리오가 금과 노란색으로 묘사하는 것들에 넘어가게 되고, 작가는 이러한 모순을 꼬집는다. 과연, 남을 비판한다는 사람이 진정으로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p105

사랑에 빠지는 건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현상이다. 첫눈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나마 설명이 크게 어렵지 않은 형식의 기적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전에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처럼 나중에 찾아오는 벼락같은 사랑은 이성에 대한 가장 거대한 도전이다. 돈 엘리미리오는 사튀르닌이 계란 노른자와 금의 결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 우리는 사튀르닌의 노여움을 이해할 수 있다. 고작 그런 걸로 사랑에 빠져? 사실, 돈 엘레미리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니까.

 

p107

사튀르닌은 밤새 스스로에게 찬반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상황을 부여하기 위해 입장을 바꿔 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 부조리한 일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뒤늦게 자신과 협상을 벌인다. 사튀르닌은 운 나쁘게도 수상쩍기 짝이 없는 남자에게 반해 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협상은 순탄치 않았고, 부질없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었으니까.

 

p113~p117

아무 관계도 없소. 그냥<대체하다>라는 말의 부조리를 강조하려고 그런거요. 인류 파탄의 기저에 그 대체의 개념이 있으니까.

 

....중략....

 

그건 내가 대체의 개념을 거부하기 때문이오. 보시오, 난 당신을 향한 사랑에 푹 빠졌소. 당신은 나의 아홉 번째 세 든 여자요. 당신은 앞선 여덟 명의 여자를 대체하지 않소. 난 지금도 계속 그들을 사랑하오. 사랑은 매번 새롭소. 매번 새로운 동사가 필요하겠지만, <사랑하다>라는 동사가 적절하오. 왜냐하면 모든 사랑에 공통된 긴장이 있고, 그 단어만이 유일하게 표현하니까.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3298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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