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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데미안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소설에서 싱클레어는 하루를 백년같이 보낸다. 크로머라는 일진에게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싱클레어는 금전을 갈취당하며, 그 액수가 점점 커지게 되고, 나중에는 누나까지 데리고 오라는 부당한 요구를 받는다.
싱클레어는 스스로 대항하거나,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라면, 크로머와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을 일이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크로머의 괴롭힘에 대한 걱정으로 자주 아프기까지 한다. 그런데 데미안이 갑작스럽게 독심술로 싱클레어의 마음을 간파한 것처럼, 싱클레어가 자신의 고민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깔끔하게 해결해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나타나서 크로머를 물리쳐준 것에 대해서, 감사함보다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내용에 집착을 하고, 자신의 사정을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데미안과의 대화에서 데미안이 카인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데,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데미안은 카인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어떤 강한 사람이 어떤 약한 사람 하나를 때려죽인 행위를, 무조건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이 크로머에게 일방적으로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싱클레어가 비겁하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을 늘어놓지 않았더라면 크로머가 그것을 약점을 잡고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구원을 받기 원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아벨이라고 여겼던 싱클레어는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비겁함을 감추고 밝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물론 사람이라면, 두려움과 공포와 절망과 회한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만 적어도 비겁해지지는 않아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두려움을 비겁함이 아닌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의 어떤 풍파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동경하게 되지만, 호의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데미안을 계속 피해 다니게 되고, 데미안은 그 유명한 구절을 싱클레어에게 쪽지로 전해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그리고 싱클레어는 고통의 시기를 겪는다. 주변에 몇몇의 친구가 있지만, 진정한 친구는 없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는 데미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춘기라는 성장통으로 인해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학교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방황을 한다. 그러던 어느 봄날 공원에서 본 소녀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지만, 자기연민에 빠지고 고통에 시달리며, 데미안만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떠오른다.
한참 성장통에 시달리던, 싱클레어는 이제야 압락사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압락사스가 무엇인지 알기위해 피스토리우스를 찾아간다. 피스토리우스는 압락사스에 대해 쉽사리 알려주지 않으며,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압락사스란 스스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 또 한 걸음이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만을 받지 않고, 나 자신이 도움을 받았으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대학생으로 성장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보고 싶어진다. 데미안이 살던 집으로 찾아가고 에바 부인과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에바 부인과 데미안 그리고 싱클레어는 영혼이 서로 소속되어 있는 것처럼 유대감을 나눈다. 성숙해진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데,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사람이라고 믿었던 데미안이 자신과 같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유대를 나누며 행복하게 지내지만, 데미안은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싱클레어가 낯선 사람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마지막 장의 장면은 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한 싱클레어를 의미하는 것 같다.
비록 청소년기에 비겁하고, 아프고, 끝임 없는 성장통을 겪는 싱클레어일지라도,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 한 걸음 내딛을 뿐만 아니라, 쓰러져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 인상깊은 구절 |
p42 ~ p44 그는 나를 내버려두고 알트 가세로 접어들었고, 혼자 남은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그가 가버리자마자 내게는 그가 했던 모든 말이 터무니 없어 보였다! 카인이 고귀한 인간이고, 아벨이 비겁자라구! 카인의 표적이 표창이라구! 그건 어처구니없는 얘기였다. 신성한 모독이고 극악무도였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디 가버리신거야?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던가, 아벨을 사랑하시지 않았던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하여 나는 데미안이 나를 놀렸으며 나를 골탕먹일 속셈이었다고 추측했다. 실로 빌어먹게 영리한 녀석이었다. 말은 잘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ㆍ ㆍ ㆍ 아니다ㆍ ㆍ ㆍ ㆍ . ㆍㆍㆍㆍㆍ(중략)ㆍㆍㆍㆍㆍ 물론 나 자신도 아주 정삭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심지어 몹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밝고 깨끗한 세계에서 살아왔다. 나 자신이 일종의 아벨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토록 깊이 <다른> 것에 박혀 있었다. 이렇게 심하게 떨어지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런 것에 그렇게 찬성할 수 없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 그때 마음속에서 기억하나가 번쩍 떠올라, 한순간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비참한 이 상황이 시작되었던 저 고약한 저녁, 그때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밝은 세계 그리고 지혜를 문든 꿰뚫어본 듯 경멸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카인이었고, 그의 표적을 달았던 나는 이 표적은 치욕이 아니라고, 이건 표창이라고 함부로 상상했다. 악의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다고. ㆍㆍㆍㆍㆍ(중략)ㆍㆍㆍㆍㆍ 찬찬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이상하게 데미안은 겁 없는 사람들과 비겁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했던가! 얼마나 기이하게 그는 카인의 이마에 찍힌 표적을 풀이했던가! 그때 그의 눈, 그 독특한 어른의 눈은 얼마나 놀랍게 빛을 뿜었던가! 그리고 어렴풋하게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꿰뚫고 갔다. 그 자신이, 데미안이 카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 자신이 그와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왜 그는 카인을 옹호했을까? 왜 그의 눈에는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왜 그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 겁 많은 사람들, 사실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경건한 사람들에 대하여 비웃음을 띠고 말했던가? 이런 생각을 나는 끝없이 했다.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 몹시 긴 시간 동안 카인, 쳐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비판에 이르려는 나의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p102 ~ p103 내게 가장 결핍된 한 가지, 그건 친구였다. 내가 바라보기를 아주 좋아하는 두셋의 친구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착한 사람들에 속했고, 나의 악덕은 오래전부터 이미 그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피했다. 모든 학우들에게 나는 두 발 밑의 땅이 흔들거리는, 희망 없이 노는 학생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몇 차례 엄하게 벌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만 남았는데 그건 내쪽에서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더 이상 좋은 학생이 아니다. 퇴학당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는 느낌으로 근근히 건들건들 헤쳐가고 있었다. 신이 우리를 외롭게 만들어 우리들 자신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그런 길을 그때 신이 나와 함께 갔던 것이다. 악몽과도 같았다. 더러움과 끈적거림 너머로, 깨진 맥주 잔과 독설로 지새운 밤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주문에 걸린 몽상가가, 추하고 더러운 길을 쉬지 않고 고통당하며 기어가는 모습이 공주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오물 웅덩이에, 악취와 쓰레기 가득한 뒷골목에 박혀 있는 그럼 꿈들이었다. 내 형편이 그랬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런 식으로 나는, 외로워지도록, 그리고 무정하게 환히 웃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잠긴 낙원의 문 하나를 나와 유년 사이로 세우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향수의 눈뜸이었다. p129 ~ p130 자주 나는 내 꿈속 강렬한 사랑의 영상을 그려보려 했다. 그러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했더라면, 나는 그 그림 종이를 데미안에게 보냈을 텐데.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베아트리체 시절의 저 몇 주일, 몇 달의 다정한 안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나의 꿈이 내게 편안해지자마자, 그것은 어느새 벌써 시들고 흐려졌다. 부질없다, 그 뒷모습을 보며 탄식함은! 나는 이제 가라앉지 않은 욕망, 팽팽한 기대의 불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것은 자주 나를 완전히 난폭하게 미치게 만들었다. 꿈의 연인의 영상이 자주 살아 있는 연인의 모습보다 더 똑똑하게 눈앞에 보였다. 내 자신의 손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그 영상과 더불어 나는 이야기 했고, 그 앞에서 울었고, 거기서부터 도피했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그 앞에서 눈물 흘리며 무릎 꿇었다. 연인이라고 불렀고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그 성숙한 입맞춤을 예감했다. 그것을 악마며 창녀, 흡혈귀며 살인자라고 부르면, 그 영상은 더할 나위 없이 애정 어린 사랑의 꿈으로 파렴치한 황음으로 나를 유혹했다. 그 무엇도 그 영상에게는 지나치게 선하고 귀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너무 나쁘고 저열하지 않았다. p146 특이한 음악가 피스토리우스로부터 압락사스에 대하여 들은 것을 짧게 다시 들려줄 수 없지만 그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 또 한 걸음이었다. 나는 당시에, 열여덟 살의 평범치 않은 젊은이였다. 수백 가지 일에서 조숙하고, 다른 수백 가지 일에서 몹시 뒤처지고 무력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자주 우쭐하고 교만했으나, 다른 수백 가지 일에서 몹시 뒤처지고 무력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자주 우쭐하고 교만했으나, 또 꼭 그만큼 자주 의기소침하고 굴욕스러워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천재로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절반쯤 돌았다고 생각했다. 또래들의 기쁨과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잘 되질 않았고 자주 비난과 근심으로 자신을 소모했다. 마치 내가 절망적으로 그들로부터 떨어져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내게 삶이 닫혀져 있기라도 하듯이. 그 자신이 성숙한 괴짜였던 피스토리우스는 내게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간직하는 법을 가르쳤다. 내가 한말들, 내가 꾼 꿈들, 나의 환상과 생각에서 늘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언제나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논평하면서 그는 나에게 예를 제시했다. p221 ~ p222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게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그리고 또 뭔가 있어! 에바 부인이 말했어. 네가 언젠가 잘 지내지 못하면 날더러 네게 당신의 키스를 해달라고. 나에게 함께 해준 키스를....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선선히 눈을 감았다. 내 입술 위에 가벼운 입맞춤이 느껴졌다. 입술에서는 계속해서 조금씩, 그러나 결코 줄어들지 않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사람들이 깨웠다. 붕대를 감아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완전히 잠이 깼을 때, 나는 얼른 옆 매트리스로 몸을 돌렸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거기 누워 있었다.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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