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다 - 더 큰 나를 위해
박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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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두 번째' 자서전이 나왔을 때 나는 기대하기보다는 자못 실망스러웠다. 그의 '첫 번째'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이 나온 지 4년 여. 4년이면 강산이 변할 만큼은 아니어도 대략 냇가와 언덕 정도는 변할 시간이 된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4년은 이미 '첫 번째' 자서전을 낸 사람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그 사람이 아직 한창 때의 젊은이이고, 여전히 앞으로의 의미 있는 행보가 기대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200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출전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던 사건에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고, 4년간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하던 팬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반가운 건 분명하다. 앞에서 두 번째 '자서전'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다소 책임감을 지녀야 할 것처럼 보이는 '자서전'이라는 분류 대신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로 이 책을 분류하자면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말하자면, 이건 '자서전'은커녕 '에세이'로도 민망한 수준이다.

 

박지성의 첫 번째 자서전에서는 세련되지는 않을지라도 박지성이 스스로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조곤조곤,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듯 그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차분히 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런 꾸미지 않는 솔직함에서 조금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꾸며내는 듯한 느낌이 너무 많다. 새로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거기에서 느꼈던 감정을 담백하게 복기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든 교훈이나 유명선수들의 명언을 엮어내려는 모습은 가히 안쓰러울 지경이다. 지난 자서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이나, 또는 어디서 이미 들어본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만약이지만, 이 책을 좀 더 담백하게, 그저 박지성 그 자신만의 이야기로만 채우고 그로부터 받는 느낌을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만 남겨두었다면 이 책은 훨씬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270여 페이지에 불과한 이 책의 부피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며, 결국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박지성이 자신의 안에서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풀어낸다'기보다는 월드컵에 즈음하여 기획으로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강하고, 결국 아직 쌓이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박지성이 아닌, 출판사의 과제일 테니까. 물론 남의 '자서전'을 자신의 '과제'로 바꾸는 출판사의 의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끝으로 이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비교하지마, 흔들리지마. 나를 위해, 동료를 위해, 꿈을 위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던지면 세상은 너를 향해 웃어줄거야!" 좋은 말인 것도, 그리고 내가 꽤 냉소적이라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역시나 이걸 박지성이 그대로 말한다고 생각하면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아무쪼록, 이제는 리그 1위 팀에서 꼴찌 팀으로 옮겨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박지성이 그 자신 안에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흘러넘칠 때, 비로소 그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건 현란한 수사나 넘치는 은유가 아니라, 그저 그의 삶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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