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현지에서 1년간 독점취재하다
최보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최보윤 기자의 글을 비교적 신뢰하는 편이다. 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어느 네티즌이 퍼 나른,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였는데, 프리미어리그에 관한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당시에도 그녀의 글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녀가 영국 특파원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포포투>의 '최보윤의 sexual football' 코너를 통해 정기적으로 그녀의 글을 접할 수 있었고, 나는 코너 이름만큼이나 섹시하고 매력적인 그녀의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고 있다.

그녀가 축구를 대하는 방식은 여느 기자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이를테면, 박지성의 섹시한 엉덩이를 주목한다거나, 유부남 베컴이 주는 매력을 파헤친다거나, 혹은 무리뉴 전 첼시 감독이 중년 남성으로서 보여주는 중후함을 한껏 드러내주는 식이다. 물론, 이는 '최보윤의 sexual football'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자, 그 코너의 컨셉에 맞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글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비교적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은, 축구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해체되는 경향과 맞물려, 그녀 자신의 독특한 색깔로서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역시, 그녀의 독특한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이 책을 좀 더 매력적이고 감성적으로 만들어 준다. "음. 사실 나는 패스, 돌파, 뭐 이런 것을 시간순으로 다시 뜯어 설명하거나 수치화시키는 것보다는 뭐랄까, 축구를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듯 즐기는 그런 걸 바랐었다.(91p)" 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책은 축구 전술이나 기록과 같은 객관적 사실에 주목하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인, 그러나 그로 인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함이 바로 그녀가 프리미어리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였음에 분명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박지성 선수가 몇 경기에 나서서 몇 골을 넣었고, 그가 어떤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가 맨유라는 세계적 구단에서 동료들과 어떻게 함께 어울려 나가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 조금씩 잊혀지고 비난받는 설기현 선수의 단점을 분석하기보다는, 그의 섬세한 심정과 강인한 의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러내 주는 것.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던 이영표 선수의 기록을 살피기보다는, 그의 인간적 면모에 주목하는 것. 이외에도 프리미어리그의 스타선수들과 감독들이 지닌 매력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소개해 주면서, 좀 더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프리미어리그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가 지니는 속성상 수치와 같은 객관적 정보가 전혀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정보를 버무리고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첨가해서, 달콤하고 톡톡 튀는 글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솜씨는 정말 감탄할 만하다. 예컨대, 영국 언론의 반응을 간략하게 브리핑해 준다거나, 웨인 루니의 여자친구인 콜린 맥러플린이 여성잡지에서 루니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캐치해 낸다든가 하는 것들은 저자의 주관적 시선과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자못 흥미로운 것이다. 또한, 책 구석구석을 장식하는 선수들의 사진은 마치 저자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듯, 선수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한껏 드러내는 사진들뿐이어서 이 사진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이 책도 아쉬운 점들이 없지는 않다. 두 번째 파트인 '반짝반짝 빛나는 8인의 축구 스타'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이 부분에는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라는 책 제목이 무색하게 4명의 非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영국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에서 저자가 접했을 정보와 경험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저자가 직접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들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저런 정보를 취합해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는 저자의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글이 지니는 색깔이 현저하게 사라지면서 밋밋해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초반에 그녀의 글이 주는 매력이 기대 이상이어서, 거기에 비교되는 상대적인 아쉬움이라 할 수 있을 듯하고, 축구팬이라면 결코 실망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는 역시 장점이 훨씬 많아서, 이 책은 가히 프리미어리그 팬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축구 소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내 '과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저자의 프리미어리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결국, 저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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