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헐버트 선생이 궁금해서 읽은 책. 이 책은 정말 장단점이 뚜렷하다.

 

<장점>

 

1. 국제금융인이자 헐버트기념사업을 하는 저자가 직접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이런 자료는 정말 재력있고 열정적인 수집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 모아서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존경스럽다.

2. 헐버트 선생의 일생과 함께 이후 헐버트를 기리는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실무자의 입장에서 들어볼 수 있다.

3. 헐버트 선생에 대해 중학교 3학년 이상 배웠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체로 썼다.

4. 부록에 헐버트 선생의 일생을 연표로 잘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연표가 만들어놓으면 몇 장 안 되지만 만들기는 참 힘이 드는 것인데 잘 정리된 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단점>

 

1. 저자가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하지 못한다. 즉 한국의 언어(korean language)와 한국어를 표기하는 글자(korean alphabet)을 모두  '한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책 앞부분을 읽을 때는 헐버트 선생이 korean language를 hangul이라고 써서 이렇게 썼나보다하고 따라 읽었는데 책 중간중간에 친절하게 공개한 자료 원문들로 봐서 헐버트 선생이 한국어를 '한글'이라는 명칭으로 부른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이 english를 alphabet이라고 말하고, 영어시간을 알파벳시간이라고 한다면 되게 이상하지 않을까? 한글과 한국어는 좀 구분했으면 좋겠다.

 

2. 저자가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닌데다가 헐버트 선생을 기리고 읽는 이의 존경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인물 해석이 단조롭다. 역사의 격동기답게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서술이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로 아주 선명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헐버트 선생은 좋은 역할이고 스티븐스나 모건 주일공사는 나쁜 역할이다. 민영환은 좋은 역할이고 이완용은 나쁜 역할이다. 고종황제는 좋은 역할이고 좌옹 윤치호는 나쁜 역할이다.  그래서 선한 역할을 맡은 사람을 서술할 때는 선한 역할에 적절한 표현이 나오고, 악한 역할을 맡은 사람을 서술할 때는 악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형용사, 부사, 동사가 나온다. 좋은 역할도 나쁜 역할도 아닌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 김구 선생 정도인데 그 이유는 저자가 이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서술을 할 때 중립적인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헐버트 선생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인정하는 바이지만 헐버트 선생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을 했더라면 더 깊은 분석이 이뤄졌으리라고 생각한다.

 

2-1. 선역과 악역의 이분법 구조와 함께 이 책은 계몽적인 성격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저자의 판단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인상을 준다. 헐버트 선생이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으니 우리도 한글을 세계의 수출하자는 이야기(129쪽), 헐버트 선생은 이렇게 한글을 사랑했는데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무분별하게 영어 단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한글은 파괴되어 가고 국적없는 단어가 범람(130쪽)'하고 있으니 부끄럽게 생각하고 한글을 사랑하자는 이야기, 헐버트 선생은 외국인인데도 우리나라를 사랑했으니 '우리는 나라 사랑을 가슴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꺼내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정신력으로 삼아야 한다(414쪽)'는 이야기 등이 이 책 전반에 나온다.

  이 책에 나온 헐버트 선생 관련 자료로만 봐도 국가랑 별 관련없는 아나키스트라도 헐버트 선생의 인품과 업적을 봐서는 충분히 존경할만하고, 한글과 무관한 사람이라도 헐버트 선생의 저서나 역사적 활동을 접하면 헐버트 선생을 기리고 인정할 것 같은데 저자가 너무 '이 문제는 이렇게 봐야 한다'는 식으로 자꾸 독자를 한쪽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니 나처럼 삐딱한 생각의 독자 입장에서는 읽으면서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3. 이건 완전 욕심이지만 헐버트 선생 관련 미공개 자료를 소개할 때 전문가 해제가 들어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저 욕심일 뿐이다.중학교 3학년 독자들은 이런 해제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그게 없다고 해도 이 책을 읽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그렇지만 저자도 인정한 것처럼 헐버트 선생은 한국어 연구에도 일조했고 나처럼 국어학사에 관심이 있어서 읽어보려는 사람이 이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자료 중 내 흥미를 잡아 끈 것은 1908년 3월 24일자 뉴욕타임즈의 전명운 의사와 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스 저격 기사(293쪽)이었다. 헐버트 선생의 생애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이 기사에서 장인환 의사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책에 영인된 자료들의 선명도가 높아서 아주 읽기 좋다. 아주 고마운 책이다. 다음은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실을 기자에게 시인하는 내용의 인터뷰 일부이다.

 

"Yes, me shoot him" he said to a reporter. "Me sorry? No, Him no good. Him help Japan."

 

단어 사용이나 어순이 이상하지 않은가? 위 인터뷰는 장인환 의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일까? 아니면 뉴욕타임즈 기자가 기사의 내용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장인환 의사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피진 영어를 사용한 것일까? 여하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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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죽을 때까지 여자로 산다 - 아이 없는 여성에 대한 8가지 편견
수지 라인하르트 지음, 강혜경 옮김 / 수북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독일 여성의 이야기이다. 저출산은 독일에서도 문제이고 한국도 문제이다. 하지만 독일 저출산의 사회적 배경*과 한국 저출산의 사회적 배경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mb 장로님의 말씀처럼 "이 책을 읽으며 바로 그렇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독일이라는 선진국의 대졸 이상 중산층 여성에 대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문화소외계층이나 중졸 이하의 학력을 지녔거나 월소득이 100~200만원 사이에서 불규칙하게 오가는 사람에게는 적용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이 두 가지 배경을 모르고 그냥 이 책을 읽으면 일석 선생의 책 제목마냥 이 책이 '소경의 잠꼬대'요 '먹추의 말참견'이고, 이 책을 읽다가 어이가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지도 모른다.
 
차례만 보면 30% 읽는 책이니 여기 차례를 소개한다.
 

감사의 말

I. 당신도 여기에 속하는가?
1-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 대한 오해
2- 아이를 갖고 싶은 여자들
3- 여성들은 왜 아이를 포기할까

II.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 데모크리토스에서 보부아르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계보
2- 여자는 모두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거짓말
3- 아이를 낳을까 말까?
4- 자녀 문제에서는 주도성과 자주성이 일치한다

III. 아이를 갖지 않는 열한 가지 이유
1- 아이들이 노는 수영 풀에 앉아 하품하는 대신 풀장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고 싶다
2- 가족과 함께 놀이동산을 헤매기보다는 네팔로 등산을 가고 싶다
3- 이유식 만들기로 하루를 다 보낼 것인가
4- 매력적인 여성에서 동물 어미로의 변신
5- 대도시 화초에서 변두리 잡초로
6- 연립주택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그날
7- 우울함 대신 친밀한 대화
8- 아이 걱정 없이 바 (bar) 찾기
9- 문 앞에 세워진 콤비 대신 여유 있는 삶을 택한다
10- 비타민을 고려한 맛없는 식단은 No! 먹고 싶은 것 먹기
11- 하염없이 자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단 차라리 노인들이 함께 사는 하숙집을 택한다

IV. 모성애에 관한 일곱 가지 거짓말
1- 여자는 육아와 사회생활을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다
2- 아기가 생기면 가사를 분담한다
3-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살 거라는 환상
4- 아이는 부부 사이를 견고하게 만든다는 착각
5- 아이가 조금만 자라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
6- 아이가 있으면 젊어진다
7-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엄마가 된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Ⅴ. 아이 없는 여성들에 대한 여덟 가지 편견
1- 그저 그런 남편을 가졌다
2- 여자는 아이를 원하는데 남자가 꺼린다
3- 너무 오래 망설이다가 때를 놓쳤다
4- 결손가정 출신이 많다
5- 아이들을 싫어한다
6- 모두 레즈비언이거나 성공에 미쳤다
7- 노후가 두렵다
8-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다

VI. 아이가 없어도 완벽한 여자가 될 수 있는 이유
1- 육아 외에도 소중한 경험들이 얼마든지 있다
2- 아이 없는 여성들은 어떻게 흔적을 남기는가


나오는 말 | 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출산의 문제보다 농어촌 인구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인구감소는 출생인구 감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전입인구는 없고 유출인구만 있는 농어촌에도 문제이다. 이 책에서 조목조목 지적한 애 낳기 싫은 이유가 도시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와 참 많이 겹친다.  위의 목차에서도 볼 수 있지만 "대도시 화초에서 변두리 잡초로"같은 별도의 장이 있을 정도이다. 독일에서는 애를 낳으면 교외로 이사를 가는 모양이다. 이에 관련된 몇 구절을 책에서 인용한다.
 
93쪽. 아이없는 여성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94쪽. 하지만 고속도로와 스모그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로운 시골로 가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현대인은 다양한 지역 출신의 재미있는 사람들이 살고 어딜가나 문화생활이 가능한 곳에 있어야 편함을 느낀다.
121쪽. 요즘은 자식이 있다는 것이 특히 여성들에게는 현대성의 포기를 의미한다. 현대성이란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유동성과 독립성을 계명으로 삼는 능동적인 삶을 뜻한다.
 
육아가 힘들어서 애를 낳지 않겠다거나, 육아에 돈이 많이 들어서 애를 낳지 않겠다거나,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애한테 정이 안 가서 애를 낳지 않겠다거나, 애를 낳으면 일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애를 낳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애를 낳으면 시골로 가야 하니까 애를 낳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내가 인간관계가 협소하고 견문이 좁은 탓인지 아님 독일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여하튼 매우 신선한 사유였다.
 
최근 농촌인구과소화가 방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애 낳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보다 왜 한국의 농촌 미혼 남성들이 결혼하기 어려우며, 왜 전라남도 나주나 경상북도 상주처럼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때도 인구가 몰리던 지역이 지금  서울 구로동 인구보다 적은 10만명 이하로 떨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열심히 책 쓴 저자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미 애를 낳은 내 입장에서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남얘기'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거라도 생각하게 해 주니 저자에게 고맙긴 고맙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이 뭐냐면 "여성의 자주권을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281쪽. 아이로 인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지 또는 자녀가 어머니의 발전을 촉진할지 저해할지는 모든 여성이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이 책에는 여성의 자주권이 강조되어 있지만 사실 애는 성모마리아가 아닌 이상 혼자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애를 낳지 않으려면 부부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부부 독자들을 위해서 이 책의 제목은 '우린 죽을 때까지 커플로 산다'로 바꾸고 애를 안 낳으면 남자도 편하다고 썼어야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 진술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전제로 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웃은 부분은 책 앞 부분에서 왜 애를 안 낳느냐고 들들볶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이다. 나는 독일이 한국보다 남의 참견을 덜 하고 개인주의가 강한 cool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난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는 모양이다.^^) 여기 나온 내용을 보니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게다가 무례하기까지하다. 德國이 양반의 나라가 아니라서 그런가?) 덜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 독일 저출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헤르비히 비르크의 인구학 교양서인 사라져가는 세대 를 읽어보면 된다. '지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책보다 훨씬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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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 - 전2권 세트 위대한 영화
로저 에버트 지음, 최보은.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 시간나면 보는 책이다. 훌륭한 영화에 대한 짧은 비평과 추천사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된다. 원문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번역 상으로도 멋진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아주 잘 읽힌다. 재미있다.

 

나는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좋아하고 반복해서 보는 영화가 몇 편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들이 여행기를 읽는 이유와 비슷하게 영화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그 동네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남이 본 이야기가 그럴싸하면 '아, 멋지군.'하며 웃을 수 있어서 좋다.

 

다행히 이 책에는 내가 본 영화들이 많이 나온다. 안 본 영화도 있지만 그래도 책이 재미있으니 상관 없다. 저자가 강추하여 보라는 장면은 유튜브로 찾아 보면서 읽었다.  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책을 좋아한다. 내가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판매자라면 이 책을 끼워서 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아이패드나 갤탭으로 이 책의 저자가 추천한 영화 장면을 실시간으로 찾아서 보라고. 그리고 저자가 그 영화를 보며 느낀 감동을 당신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의 본문에서는 최상급 표현이 많이 나오지만 저자가 충분히 최고였다고 느꼈으니까 그렇게 썼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보고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럽다.  특히 공포영화나 범죄영화처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의 경우는 저자가 느낀 감동을 내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는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자가 쓴 책을 보고 저자가 느낀 감동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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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전염된다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 제임스 파울러 지음,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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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행복에 대한 책도 아니고 전염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는 책도 아니다. 책 제목이 내용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제목이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책이다. 책의 원제인 connected는 사회연결망이라는 측면에서 그럴싸한 제목이다.

제목에 '행복'이라고 고딕체로 써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수록 행복한 기분은 커녕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행복만 전염되는 게 아니라 자살이나 질병이나 이른바 히스테리도 전염된다. 이 책에는 행복이 전염되는 이야기가 10%정도 써 있으면 별로 안 행복한 자살, 성병과 심인성 질환, 망상 등 정신병을 포함한 전염병, 은행을 파산시킨 예금인출러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안에서 발생한 사이버 전염병에 의해 캐릭이 죽어넘어지는 사건 등이 책 내용의 40% 이상이다. 또한 행복 전염 과정은 그리 자세하게 써 있지 않지만 자살 전염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써 있다. 어젯밤에 읽으면서 정말 으스스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이 책의 자세한 기술과 부록의 원색도판은 사회연결망을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연결망 연구의 자료를 제공하게 된 공중보건의들의 전염병 추적 노력에 감동했다. 또한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은 그동안 알려진 '상식'에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거나 뒤집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인 '결혼하면 오래 산다(미국 사람 기준으로 남성은 7년, 여성은 2년 더 산다고 한다)'는 명제가 근거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결혼하면 오래살까? 이른바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국제결혼도 수명에 도움이 되나? 동성결혼을 해도 수명이 늘어날까?

 

위 질문에 대해  이 책이 제시한 답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정리하겠다.

 

1. 더 정확히 말하면 결혼을 해서 수명이 느는 것보다 배우자를 잃어서 명이 짧아지는(제 명대로 못 사는^^)효과가 더 크다. ( 책 '나는 몇살까지 살까' 에서도 아예 독신으로 살면 오래 사는데 사별을 하거나 이혼을 하면 수명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 다인종 결혼을 연구한 예를 보면 백인 아내와 사별한 경우는 백인 남성 남편이나 흑인 남성 남편이나 모두 상실감이 컸지만 흑인 아내와 사별한 경우 인정과 상관 없이 남편의 상실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저자들은 흑인 아내의 가족, 즉 처가와의 유대가 흑인 여성의 경우 사별 후에도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한다. 

 

3.  처가와의 유대에서 알 수 있듯 결혼을 하면 더 크고 안정된 소셜네트워크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수명연장에 영향을 준다.

 

4.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지만 조합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남성 동성 결혼에서 수명이 7년 늘어나고, 여성 동성 결혼에서 수명이 2년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성 동성결혼에서 2년 늘어나고 여성 동성결혼에서 7년 늘어난다면 이 경우는 결혼이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라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설명할 수 있다.(물론 사회에 따라서 동성결혼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압력이 극심하여 결혼을 해도 수명연장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인용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다. 몇 가지 여기 옮기면 다음과 같다.

 

60쪽. 어떤 학자들은 개인의 선택과 행동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집단행동을 설명한다.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개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회계급, 인종, 정당 등의 집단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집단들은 집단 내의 사람들을 신비하고도 마술적으로 함께 행동하게 만드는 집단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법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개인과 집단에 관한 과학이고, 그리고 개인들이 어떻게 집단이 되는지 연구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93쪽. 행복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나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의 한 성질이기도 하다. 개인의 행복에 일어난 변화는 사회적 연결을 통해 물결처럼 퍼져나가면서 네트워크에 대규모 패턴을 만들어내고, 행복한 개인들과 불행한 개인들의 무리를 만들어 낸다.

 

94쪽. 우리는 행복을 전파시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메커니즘을 생각해볼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운을 나누어 주거나(예컨데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거나 재정적으로 관용을 베풂으로써), 다른 사람들에 대한 행동이 변학나, 혹은 단순히 전염성이 있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100쪽.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은 친구가 적어 고독감을 느끼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소수의 유대를 단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고독감도 전염된다.) 이러한 보강효과는 우리의 사회적 구조가 스웨터 소매에서 풀려나오는 털실처럼 가장자리에서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우리 사회의 고독감과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소셜네트워크를 복구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필요하다. 이는 전체 네트워크가 허물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158쪽. 지난 10년동안 이루어진 가장 많은 연구는 소셜 네트워크의 구조와 소셜 네트워크가 성병 확산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 연구들에는 추적 가능하고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병균에 대한 조사가 포함되어 있었고, 또 섹스는 사실상 두 사람 사이의 직접적 연결을 말해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중략) 성병 연구는 네트워크의 창발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즉, 어떤 현상을 조사할 때에는 개개인이나 개개 커플을 조사하는 것보다는 전체 집단을 조사하는 게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165쪽.사회학자 에드 로만(Laumann)과 그 동료들은 성병 발생률이 백인보다 흑인 사이에서 더 높은 것은 두 집단의 성 네트워크 패턴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변(파트너가 1명인 사람)에 있는 흑인이 중심부(파트너가 4명 이상인 사람)에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확률은 주변에 있는 백인이 중심부에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확률보다 5배나 높다.

 

166쪽. 소셜 네크워크에 대한 연구는 사람들이 위험한 위치에 놓이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탓이라기보다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78쪽. 항만 노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에릭 호퍼(Hoffer)는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대개 서로를 모방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81쪽, 규범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퍼져나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그 생각과 관련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생각을 퍼뜨릴 수 있다.

 

184쪽, 인류학자들은 어느 한 지역 안에서 통용되는 국지적 관습을 '문화'라고 부른다.

 

208쪽, 근로자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1달러를 쓸 때마다 그 근로자의 가족, 동료, 친구, 심지어 친구의 친구의 건강까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투자 대비 이익을 크게 증가시킨다. 고용주나 보험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데(중략) 따라서 근로자를 표적으로 삼음으로써 덤으로 근로자 가족의 건강까지 개선하는 효과를 얻는 것은 수지맞는 장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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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네버랜드 클래식 2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영선 옮김, 노먼 프라이스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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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이맘때 다시 읽었다, 지금도 또 다시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다양해진다.

 나는 이 소설을 갓 아이 티를 벗은 어린 청년 제임스 호킨스가 보물섬을 찾아가는 목적으로 모인 다양한 리더들의  집단인 히스파니올라호에 승선하면서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모험하는기업 소설로 읽었다.

  제임스 호킨스와 엮이는 어른들은 참 다양하다. 우선 몇 개의 조직이 있다. 플린트 선장의 해적단으로 대표되는 현장 노동자 조직이 있고, 선주 트릴로니로 대표되는 자본가 조직, 히스파니올라 호의 선장으로 대표되는 전문 경영자 조직, 닥터 리브지로 대표되는 지식인 조직이 있다.  

  우리의 신입사원 제임스 호킨스는 노동자 조직에서 리더급으로 움직이는 사람인 이스라엘 핸즈나 롱 존 실버의 성격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들이 해적이라는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점에 기겁을 한다.  

 또한 저자의 의도라고 여겨지는데 직접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올라가는 노동자 조직의 리더보다  상급자에게 인정받아 승진하여 관리자가 되거나 자본을 축적하여 자본가가 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라는 처세의 기본 원리에 대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배우게 된다.  

 소설 뒷부분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기업 밖에 존재하는 인물인 '벤 건'이 나타나서 모든 문제가 왕창 해결되는 것이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경영에 있어서도 조직 내의 문제를 조직과 무관한 사람의 조력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니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고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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