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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전염된다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 제임스 파울러 지음,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10년 11월
평점 :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책도 아니고 전염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는 책도 아니다. 책 제목이 내용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제목이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책이다. 책의 원제인 connected는 사회연결망이라는 측면에서 그럴싸한 제목이다.
제목에 '행복'이라고 고딕체로 써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수록 행복한 기분은 커녕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행복만 전염되는 게 아니라 자살이나 질병이나 이른바 히스테리도 전염된다. 이 책에는 행복이 전염되는 이야기가 10%정도 써 있으면 별로 안 행복한 자살, 성병과 심인성 질환, 망상 등 정신병을 포함한 전염병, 은행을 파산시킨 예금인출러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안에서 발생한 사이버 전염병에 의해 캐릭이 죽어넘어지는 사건 등이 책 내용의 40% 이상이다. 또한 행복 전염 과정은 그리 자세하게 써 있지 않지만 자살 전염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써 있다. 어젯밤에 읽으면서 정말 으스스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이 책의 자세한 기술과 부록의 원색도판은 사회연결망을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연결망 연구의 자료를 제공하게 된 공중보건의들의 전염병 추적 노력에 감동했다. 또한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은 그동안 알려진 '상식'에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거나 뒤집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인 '결혼하면 오래 산다(미국 사람 기준으로 남성은 7년, 여성은 2년 더 산다고 한다)'는 명제가 근거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결혼하면 오래살까? 이른바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국제결혼도 수명에 도움이 되나? 동성결혼을 해도 수명이 늘어날까?
위 질문에 대해 이 책이 제시한 답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정리하겠다.
1. 더 정확히 말하면 결혼을 해서 수명이 느는 것보다 배우자를 잃어서 명이 짧아지는(제 명대로 못 사는^^)효과가 더 크다. ( 책 '나는 몇살까지 살까' 에서도 아예 독신으로 살면 오래 사는데 사별을 하거나 이혼을 하면 수명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 다인종 결혼을 연구한 예를 보면 백인 아내와 사별한 경우는 백인 남성 남편이나 흑인 남성 남편이나 모두 상실감이 컸지만 흑인 아내와 사별한 경우 인정과 상관 없이 남편의 상실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저자들은 흑인 아내의 가족, 즉 처가와의 유대가 흑인 여성의 경우 사별 후에도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한다.
3. 처가와의 유대에서 알 수 있듯 결혼을 하면 더 크고 안정된 소셜네트워크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수명연장에 영향을 준다.
4.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지만 조합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남성 동성 결혼에서 수명이 7년 늘어나고, 여성 동성 결혼에서 수명이 2년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성 동성결혼에서 2년 늘어나고 여성 동성결혼에서 7년 늘어난다면 이 경우는 결혼이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라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설명할 수 있다.(물론 사회에 따라서 동성결혼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압력이 극심하여 결혼을 해도 수명연장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인용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다. 몇 가지 여기 옮기면 다음과 같다.
60쪽. 어떤 학자들은 개인의 선택과 행동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집단행동을 설명한다.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개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회계급, 인종, 정당 등의 집단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집단들은 집단 내의 사람들을 신비하고도 마술적으로 함께 행동하게 만드는 집단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법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개인과 집단에 관한 과학이고, 그리고 개인들이 어떻게 집단이 되는지 연구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93쪽. 행복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나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의 한 성질이기도 하다. 개인의 행복에 일어난 변화는 사회적 연결을 통해 물결처럼 퍼져나가면서 네트워크에 대규모 패턴을 만들어내고, 행복한 개인들과 불행한 개인들의 무리를 만들어 낸다.
94쪽. 우리는 행복을 전파시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메커니즘을 생각해볼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운을 나누어 주거나(예컨데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거나 재정적으로 관용을 베풂으로써), 다른 사람들에 대한 행동이 변학나, 혹은 단순히 전염성이 있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100쪽.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은 친구가 적어 고독감을 느끼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소수의 유대를 단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고독감도 전염된다.) 이러한 보강효과는 우리의 사회적 구조가 스웨터 소매에서 풀려나오는 털실처럼 가장자리에서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우리 사회의 고독감과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소셜네트워크를 복구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필요하다. 이는 전체 네트워크가 허물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158쪽. 지난 10년동안 이루어진 가장 많은 연구는 소셜 네트워크의 구조와 소셜 네트워크가 성병 확산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 연구들에는 추적 가능하고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병균에 대한 조사가 포함되어 있었고, 또 섹스는 사실상 두 사람 사이의 직접적 연결을 말해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중략) 성병 연구는 네트워크의 창발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즉, 어떤 현상을 조사할 때에는 개개인이나 개개 커플을 조사하는 것보다는 전체 집단을 조사하는 게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165쪽.사회학자 에드 로만(Laumann)과 그 동료들은 성병 발생률이 백인보다 흑인 사이에서 더 높은 것은 두 집단의 성 네트워크 패턴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변(파트너가 1명인 사람)에 있는 흑인이 중심부(파트너가 4명 이상인 사람)에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확률은 주변에 있는 백인이 중심부에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확률보다 5배나 높다.
166쪽. 소셜 네크워크에 대한 연구는 사람들이 위험한 위치에 놓이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탓이라기보다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78쪽. 항만 노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에릭 호퍼(Hoffer)는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대개 서로를 모방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81쪽, 규범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퍼져나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그 생각과 관련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생각을 퍼뜨릴 수 있다.
184쪽, 인류학자들은 어느 한 지역 안에서 통용되는 국지적 관습을 '문화'라고 부른다.
208쪽, 근로자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1달러를 쓸 때마다 그 근로자의 가족, 동료, 친구, 심지어 친구의 친구의 건강까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투자 대비 이익을 크게 증가시킨다. 고용주나 보험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데(중략) 따라서 근로자를 표적으로 삼음으로써 덤으로 근로자 가족의 건강까지 개선하는 효과를 얻는 것은 수지맞는 장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