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헐버트 선생이 궁금해서 읽은 책. 이 책은 정말 장단점이 뚜렷하다.

 

<장점>

 

1. 국제금융인이자 헐버트기념사업을 하는 저자가 직접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이런 자료는 정말 재력있고 열정적인 수집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 모아서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존경스럽다.

2. 헐버트 선생의 일생과 함께 이후 헐버트를 기리는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실무자의 입장에서 들어볼 수 있다.

3. 헐버트 선생에 대해 중학교 3학년 이상 배웠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체로 썼다.

4. 부록에 헐버트 선생의 일생을 연표로 잘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연표가 만들어놓으면 몇 장 안 되지만 만들기는 참 힘이 드는 것인데 잘 정리된 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단점>

 

1. 저자가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하지 못한다. 즉 한국의 언어(korean language)와 한국어를 표기하는 글자(korean alphabet)을 모두  '한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책 앞부분을 읽을 때는 헐버트 선생이 korean language를 hangul이라고 써서 이렇게 썼나보다하고 따라 읽었는데 책 중간중간에 친절하게 공개한 자료 원문들로 봐서 헐버트 선생이 한국어를 '한글'이라는 명칭으로 부른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이 english를 alphabet이라고 말하고, 영어시간을 알파벳시간이라고 한다면 되게 이상하지 않을까? 한글과 한국어는 좀 구분했으면 좋겠다.

 

2. 저자가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닌데다가 헐버트 선생을 기리고 읽는 이의 존경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인물 해석이 단조롭다. 역사의 격동기답게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서술이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로 아주 선명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헐버트 선생은 좋은 역할이고 스티븐스나 모건 주일공사는 나쁜 역할이다. 민영환은 좋은 역할이고 이완용은 나쁜 역할이다. 고종황제는 좋은 역할이고 좌옹 윤치호는 나쁜 역할이다.  그래서 선한 역할을 맡은 사람을 서술할 때는 선한 역할에 적절한 표현이 나오고, 악한 역할을 맡은 사람을 서술할 때는 악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형용사, 부사, 동사가 나온다. 좋은 역할도 나쁜 역할도 아닌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 김구 선생 정도인데 그 이유는 저자가 이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서술을 할 때 중립적인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헐버트 선생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인정하는 바이지만 헐버트 선생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을 했더라면 더 깊은 분석이 이뤄졌으리라고 생각한다.

 

2-1. 선역과 악역의 이분법 구조와 함께 이 책은 계몽적인 성격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저자의 판단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인상을 준다. 헐버트 선생이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으니 우리도 한글을 세계의 수출하자는 이야기(129쪽), 헐버트 선생은 이렇게 한글을 사랑했는데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무분별하게 영어 단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한글은 파괴되어 가고 국적없는 단어가 범람(130쪽)'하고 있으니 부끄럽게 생각하고 한글을 사랑하자는 이야기, 헐버트 선생은 외국인인데도 우리나라를 사랑했으니 '우리는 나라 사랑을 가슴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꺼내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정신력으로 삼아야 한다(414쪽)'는 이야기 등이 이 책 전반에 나온다.

  이 책에 나온 헐버트 선생 관련 자료로만 봐도 국가랑 별 관련없는 아나키스트라도 헐버트 선생의 인품과 업적을 봐서는 충분히 존경할만하고, 한글과 무관한 사람이라도 헐버트 선생의 저서나 역사적 활동을 접하면 헐버트 선생을 기리고 인정할 것 같은데 저자가 너무 '이 문제는 이렇게 봐야 한다'는 식으로 자꾸 독자를 한쪽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니 나처럼 삐딱한 생각의 독자 입장에서는 읽으면서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3. 이건 완전 욕심이지만 헐버트 선생 관련 미공개 자료를 소개할 때 전문가 해제가 들어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저 욕심일 뿐이다.중학교 3학년 독자들은 이런 해제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그게 없다고 해도 이 책을 읽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그렇지만 저자도 인정한 것처럼 헐버트 선생은 한국어 연구에도 일조했고 나처럼 국어학사에 관심이 있어서 읽어보려는 사람이 이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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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의 자료 중 내 흥미를 잡아 끈 것은 1908년 3월 24일자 뉴욕타임즈의 전명운 의사와 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스 저격 기사(293쪽)이었다. 헐버트 선생의 생애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이 기사에서 장인환 의사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책에 영인된 자료들의 선명도가 높아서 아주 읽기 좋다. 아주 고마운 책이다. 다음은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실을 기자에게 시인하는 내용의 인터뷰 일부이다.

 

"Yes, me shoot him" he said to a reporter. "Me sorry? No, Him no good. Him help Japan."

 

단어 사용이나 어순이 이상하지 않은가? 위 인터뷰는 장인환 의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일까? 아니면 뉴욕타임즈 기자가 기사의 내용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장인환 의사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피진 영어를 사용한 것일까? 여하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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