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리즈 머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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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중간 중간 읽다가 덮었다. 특히 마약에 관련된 부분들은 읽다가 도저히 못 견뎌서 통으로 넘긴 부분들이 많았다. (역시 나는 비위가 많이 약해졌다.) 마약상인 아버지, 마약에 중독되고 에이즈에 걸려 죽은 어머니. 그런데 가장 신기한 것은 이렇게 본인들 상태는 아주 좋지 않은 부모이지만 자기 딸들을 끔찍하게(?) 지속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이고 딸들에게 좋은 말씀(하긴 예수님도 바리새인의 말은 들으라고 했다.)들을 들려주고 책을 읽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부모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자기 몸 망가뜨리지 않고 하버드까지 가게 된 기적은 여기서 일어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존중했고, 자녀는 부모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오히려 이 주인공의 발전을 방해한  것은 공교육 교사였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공교육 교사들은 그녀의 가난과 부모의 난잡함과 무시무시한 주변 환경을 주인공과 동일시하여 취급했고 주인공은 여기서 모욕감을 느낀다. 공교육에서 밀려나고 사회의 벼랑에 매달렸던 주인공은 대안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 공부한다. 그렇게 한 과목, 두 과목 이수하면서 대학에 가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자기가 사는 동네 사람 누구도,그리고 본인 자신까지도 본 적 없는 신문 뉴욕타임즈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에 가서 희망의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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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
저넷 월스 지음, 김정희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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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나 사진을 보면 마트 계산대 옆에 놓인 `수퍼마켓 타블로이드`가 늘 궁금했는데 그 물건의 정체를 알려준 책. 재미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뉴 어쩌고`니 `어쩌고 데일리`같은 인터넷 `찌라시`에 대해 이 책 수준의 분석 도서가 나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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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타일의 두 얼굴 - 미국판 강남좌파의 백인 문화 파헤치기
크리스천 랜더 지음, 한종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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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의 직역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쉽다 " stuff white people like" 그렇다. 이 책은 "미국 백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일람표이다. 저자 블로그 ( http://stuffwhitepeoplelike.com/ )에 가면 이 책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 제목에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쓴 것이 마음에 안 든다. 따지고 보면 미쿡 나성시 오렌지동 교포들도, 뉴욕시 뉴저지동 교포들도 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산다. 이 책은 콕 찍어서 백인에 대한 책인데 왜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제목을 달았는지 모르겠다. 

 

제목은 이상하지만 번역은 아주 재미있게 했다. 그건 아주 좋다.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니까 번역도 재미있게 해야 한다. 예전에 마이클 무어나 벤 스타인의 책 한국판을 보고 번역이 매우 진지하여 근엄한 표정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본문의 해당 영어 단어에 대해 번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한국어 대역어에 웃기는 단어와 학술적인 단어가 있으면 학술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번역이었다. 나는 번역가가 진지하고 교양있고 평소에도 품위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어서 그랬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위의 사진처럼 내 마음의 거문고를 사정없이 튕겨주는 문장들이 있었다. 책의 모든 내용에 동감하지는 않고 그럴만큼 미국 백인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지도 않지만 여하튼 다음 문장들은 마음에 들었다. 앞의 숫자는 페이지수이다.

 

 

16. 흔히 백인들은 자신들이 '정신적'이지만 어떤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와 상관없는 종교를 믿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58. 백인들의 여러 활동이 그렇듯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 역시 환경에 도움을 준다는 자족감과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갖게 해 준다. 

 

72. 백인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인디음악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백인들은 '주류'를 혐오하며, 더 진실하고 독특하면서도 그들의 체험을 잘 반영하는 것을 찾는데 필사적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에게는 (기존의 대중음악과는 다른) 인디 음악이 있다.

 

76. 채식주의자든 비건(vegan)이든 아니면 육식에 대해 죄책감을 갖든 간에 백인들은 스시를 무척 좋아한다. 스시에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외래 음식인데다가 비싸고, 건강에 좋기까지 하다.

 

82. 백인들은 대학에 가서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경향이 있다.(중략) 이런 학위 과정을 통해 백인들은 인생의 몇 년간을 독서와 리포트 쓰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할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프루스트를 읽으며 당신 혹은 사회에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중략) 그렇다면 자연과학과 공학, 경영학을 공부하는 백인들은 어떨까? 그들은 의사가 되지 못하면 본질적으로 백인 자격을 잃는다(그 자격을 되찾기 위해서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길밖에 없다.)

 

83. 백인들이 인문학 학위를 필요로 하는 진짜 이유는 파티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좋은 관계도 형성하고, 일자리도 얻고, 부자들도 알게되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95. 백인들에게는 요리를 즐겨야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그들은 멋진 주방을 갖추고 만들기 어려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신선한 유기농 재료를 가지고 요리해야한다는 강박감을 느낀다. 뛰어난 셰프라면 식칼 하나와 냄비 몇 개로 환상적인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데도 백인들은 완벽한 주방 기기와 도구 일체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다음 글을 읽고 소리내어 웃었다.*********

 

96. 진정한 백인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그들은 백인 주방의 성배라 할 수 있는 키친에이드사의 스탠드 믹서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이 믹서를 주방의 색깔에 맞추어 눈길을 끌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많은 종교적 유물과 마찬가지로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손대지 않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증명하는 주방의 보물로 고이 모실 것이다. 

 

98. 왜 그렇게 많은 백인들이 변호사가 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로스쿨 입학을 결정하는 배후에 숨겨진 이야기와 갈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부 최종학년이 되면 백인들은 그들의 학위가 쓸모없다는 혹독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대다수의 백인들은 졸업을 하면 즉각 여행 작가나 영화제작진이 되어 1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3년 동안 해 왔기때문에 이 깨달음은 너무도 가혹한 것이다. 게다가 출판 및 기타 미디어, 비영리단체 분야의 일자리를 구하러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으로 이사하는 백인들이 수천 명은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모멸감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 분야의 연봉으로는 백인다운 생활방식을 유지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유기농 식품과 인도 여행, 프리우스 자동차(중략) 모두 비싸지만 백인들은 이것들을 매우 필요로 한다.(중략) 로스쿨을 다니고 나면 백인들은 복잡하게 계산할 것도 없이 1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135. 대학원은 많은 백인들의 행복 요건을 충족시켜 준다. 세상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고, 정부(혹은 대학)가 그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항의할 수 있고, 자신이 가난하다고 주장할 수 있고, 더 똑똑해지는 기분을 누릴 수 있으며,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수 있고, 연속 3일 쉬고서 주중 내내 잠까지 잘 수 있다!   봉급이나 고용가능성을 높여 주지도 못할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많은 백인들이 교수가 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할 것이다.

 

136. (백인은) 소도시의 교수가 되어서, 그 지방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교양이 없는가를 설파하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사람이라고 다 똑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여러분들은)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들이 독서를 당신보다 더 했을 수는 있으나 그들이 당신보다 경쟁력 있거나 호감을 끄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음은 늘 궁금했는데 이제 알게 되어 시원해진 내용이다. ********

 

174. 백인들의 체온은 논리적이거나 일관된 원칙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백인들은 자주 이상하거나 불합리해보이는 복장을 하게 된다. (중략)상체는 냉하나 하반신은 더울 때, 몸을 편하게 해주는 반바지와 추리닝 상의를 입는 백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백인의 체온조절을 도와주는 것은 스카프다. 

 

230. 백인들은 어떤 일을 야외에서 하면 수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중략) 야외에서의 식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백인들은 약간의 불편을 겪는 것도 싫어한다. (중략) 늦은 밤 당신은 작은 우산처럼 보이는 철탑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은 프로판가스 난로다. 덕분에 백인들은 난방 및 에너지 효율을 무시한 채, 실내처럼 쾌적한 온도를 즐길 수 있다, 백인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묻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245. 당신은 도시 교통에 큰 기여를 하는 수많은 버스에 왜 백인이 없는지 의문스러울 것이다. 백인들은 버스가 계속 정차하며 냄새나는 사람들을 태우는 커다란 미니밴이라고 여긴다. 절대 백인들에게 이 사실을 지적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중교통을 애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비애에 젖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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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을 묻다 -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권보드래.천정환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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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문이 매우 마음에 든다. 저자들이 정말로 '이 책을 왜 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7쪽. 그는 여의도 정치판으로부터 평범한 사람의 정치적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모델'이자 망령인 것이다. 그 망령을 영원히 묻어버리거나 쫓아내기는 참 어렵다. 아마 한국에서 국가주의가 기능하고 '경제성장'에의 환상이 없어지지 않는 한, 더 오래 우리는 박정희의 포로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박정희는 인민주의(포퓰리즘)적인 '통치성'과 발전국가의 환각을 강렬하게, 길어도 '너무' 길게, 보여주고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절대빈곤과 후진성 위에 성립한 악몽이지만, 그 통치는 단지 폭력으로 점철된 독재와 괴상한 법률, 그리고 정치제도로만 환원될 수 없는 총체적 차원의 것이기도 했다. 그 '총체'를 이 책에서는 '문화'라고 부른다. 

 

8쪽. 우리는 '좋은 전설'로 아직 살아있는 1960년대와, 우리들 삶과 마음속의 어두운 망령인 1960년대를 함께 성찰하고 한꺼번에 벗어나야 한다. 사실 그럴 만한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들, 1960년대의 주역들이 주춧돌을 놓았던 민주주의와 '근대성'은 이미 낡은 것이 됐다. 또는 '종언' 휘슬이 울렸지만 인위적으로는 연장전이 계속되고 있는 '근대문학'처럼, 아직 살아 있다 하더라도 곧 마를 우물 같은 것이거나 낡은 참조 대상일 뿐이다. 

 

8쪽.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죽지 않은, 바꿔 말하면 박정희, 장준하, 함석헌, 임석진, 김질락, 최인훈, 전혜린, 이어령, 김현, 이청준, 백낙청 같은 고유명사에 실린 그 시절의 정신과 지성, 아니, 단지 거명된 엘리트나 지식인만의 것은 아닌 수만에 달했던 <사상계>와 그보다 더 많던 <여원>의 독자들처럼 대중문화, 사상, 교양 등에서 '아래로부터' 새로운 현대를 창출해냈던 무명씨들의 망탈리테, 그러나 결국 서서히 사라질, 그러나 오늘에 맞닿은 근과거, 이들이 이 책의 주제이자 '배경'이다.  

 

11쪽. '국문학자'들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해할 독자가 혹 있을까. '문화론적 연구'란 연구방법과 시야의 전환을 아우르는 말이다. (중략)우리는 저 불타버린 1980년대의 사회과학과 민중, 민족문학 속에서 자라났고, 환멸과 욕망의 1990년대에 근대성론과 '포스트'사상을 배웠다.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도로서 우리를 키운 팔 할은 김윤식과 조동일, 김현과 백낙청이었으며, 전국적으로 균일한 '국어국문학과'의 교정과 이념의 체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장대한 체계가 서서히 힘을 잃더니 와르르 무너지는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중략) 문학연구의 전환은 '1987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20대를 시작하고, 2000년대에 30대를 보낸 세대가 품어온 갈증의 표현이자 새로운 지적, 인간적 현실에 대한 절실한 인문학적 요청을 끌어안고자 하는 전신의 시도였다.

 

12쪽. 신자유주의 체제 최전선의 하나인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할 정도로 맹목적이고 순수한(?) '경쟁'을 강요한다. '(영어)논문'이 지상 최고의 글쓰기처럼 된 오늘날 대학에서 이런 '책'은 매우 홀대받는다. 더구나 이렇게 한가롭게(?) 공저 따위를 출판하는 일은 두 사람이 다 '가진 것 많은' 정규직이니까 가능한 일이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책의 '물적 토대'이다. 대학문화를 지배하며 한국 지성사에서 분명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만들고 있는 이 간교한 양과 돈 중심의 문화는 분명 심각한 연구거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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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어린 시절 -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
아네트 라루 지음, 박상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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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10살 아이를 둔  미국의 열두 가정을 대상으로 한 연구. 교육사회학, 참여관찰법, 질적연구, 도시민족학 등의 방법론이 적용되었다.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 중산층 아이들은 여가 시간 보다 주요 교육 기관에서 집중적으로 미래를 위한 교육을 받고, 노동자나 빈곤층 아이들은 오랜 여가 시간에 또래집단을 형성하여  자기주도적 놀이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중산층이나 노동자나 모두 주요 교육 기관에 속해 있고 - 여기서 벗어나면 갈 데가 없다. 한국은 '바깥'이 매우 추운 나라이다. - 노동자나 빈곤층 아이들은 여가 시간이 부족하고 미국의 빈곤층 아이들이 '비싸서' 접하지 못하는 게임이나 인터넷에 중독되기도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중산층 가정은 부모와 자녀가 토론과 협상의 대화법을 사용하고 이 화법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데 바탕이 되지만 빈곤층 가정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자신의 의사를 발언하지 못하는 명령조 대화법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의 노동 시간이 길어서 서로 만날 시간이 없고, 부모의 학력이 낮아 어휘력이 부족하여 사용 어휘나 화법이 다양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중산층이나 빈곤층이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상명하달식의 화법이 일반적이고, 아예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는 small talk 문화가 없어서 일년에 두어번 친척들이 만나는 명절 때 서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 시집 안 가냐, 취직 안 하냐 같은 이야기로 말폭탄이 쏟아지는 판이다.

 

그렇지만 양육에 부모와 돈이 개입하는 방식이나 계층이 고착화되는 방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기 때문에 계층분리를 이해하고 질적연구 방법론을 배운다는 차원에서 읽어볼 가치는 있다. 기억하기 위해 몇 부분을 여기 옮긴다.

 

 

 19쪽. 이 책을 통해 나는 가정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모여 자녀 양육에 대한 문화적 논리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중략)현재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양육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20쪽. 아이를 키우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지난 2세기에 걸쳐 규칙적으로 변해왔다. 처음에는 병에 담긴 분유를 먹이며 엄격한 체벌을 동반한 양육을 강력히 권고하다가, 현대에는 모유를 수유하며 정서적 온기를 전하고 이성과 타협을 통해 양육하라는 건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중략) 가장 빠르게 반응한 부류는 중산층 부모들이었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미국의 중산층 자녀들은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라는 전망에 직면했다. 따라서 자녀가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중산층 부모들은 더더욱 자녀의 발전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20쪽. 노동자나 빈곤층 가정에서는 자녀에 대한 계획적 양육이나 중산층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가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노동자 가정과 빈곤층 가정에서는 자녀의 자연적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성취로 간주된다.

 

24쪽. 미국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성취를 그 사람의 개인적 자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노래 <마이 웨이>나 각종 회고록, 텔레비전 토크쇼, 신문 기사들도 개인의 가치를 중시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이루어낸 성과는 그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과 결부된다. 이러한 신념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지탱하는 뼈대라고 할 수 있다.

 

25쪽. 유럽인과 비교하면 훨씬 많은 미국인들이 개인의 노력에 따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보고 들으며 자란 아메리칸 드림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상향이다. 성실히 일하고 규칙을 지키면 신께서 주신 재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으로 노력한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큼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미국식 이념은 부자와 빈자를 막론하고 과반수의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가 계층화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중략)게다가 이러한 자원은 자손에서 자손에게로 세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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