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을 묻다 -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권보드래.천정환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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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문이 매우 마음에 든다. 저자들이 정말로 '이 책을 왜 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7쪽. 그는 여의도 정치판으로부터 평범한 사람의 정치적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모델'이자 망령인 것이다. 그 망령을 영원히 묻어버리거나 쫓아내기는 참 어렵다. 아마 한국에서 국가주의가 기능하고 '경제성장'에의 환상이 없어지지 않는 한, 더 오래 우리는 박정희의 포로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박정희는 인민주의(포퓰리즘)적인 '통치성'과 발전국가의 환각을 강렬하게, 길어도 '너무' 길게, 보여주고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절대빈곤과 후진성 위에 성립한 악몽이지만, 그 통치는 단지 폭력으로 점철된 독재와 괴상한 법률, 그리고 정치제도로만 환원될 수 없는 총체적 차원의 것이기도 했다. 그 '총체'를 이 책에서는 '문화'라고 부른다. 

 

8쪽. 우리는 '좋은 전설'로 아직 살아있는 1960년대와, 우리들 삶과 마음속의 어두운 망령인 1960년대를 함께 성찰하고 한꺼번에 벗어나야 한다. 사실 그럴 만한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들, 1960년대의 주역들이 주춧돌을 놓았던 민주주의와 '근대성'은 이미 낡은 것이 됐다. 또는 '종언' 휘슬이 울렸지만 인위적으로는 연장전이 계속되고 있는 '근대문학'처럼, 아직 살아 있다 하더라도 곧 마를 우물 같은 것이거나 낡은 참조 대상일 뿐이다. 

 

8쪽.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죽지 않은, 바꿔 말하면 박정희, 장준하, 함석헌, 임석진, 김질락, 최인훈, 전혜린, 이어령, 김현, 이청준, 백낙청 같은 고유명사에 실린 그 시절의 정신과 지성, 아니, 단지 거명된 엘리트나 지식인만의 것은 아닌 수만에 달했던 <사상계>와 그보다 더 많던 <여원>의 독자들처럼 대중문화, 사상, 교양 등에서 '아래로부터' 새로운 현대를 창출해냈던 무명씨들의 망탈리테, 그러나 결국 서서히 사라질, 그러나 오늘에 맞닿은 근과거, 이들이 이 책의 주제이자 '배경'이다.  

 

11쪽. '국문학자'들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해할 독자가 혹 있을까. '문화론적 연구'란 연구방법과 시야의 전환을 아우르는 말이다. (중략)우리는 저 불타버린 1980년대의 사회과학과 민중, 민족문학 속에서 자라났고, 환멸과 욕망의 1990년대에 근대성론과 '포스트'사상을 배웠다.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도로서 우리를 키운 팔 할은 김윤식과 조동일, 김현과 백낙청이었으며, 전국적으로 균일한 '국어국문학과'의 교정과 이념의 체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장대한 체계가 서서히 힘을 잃더니 와르르 무너지는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중략) 문학연구의 전환은 '1987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20대를 시작하고, 2000년대에 30대를 보낸 세대가 품어온 갈증의 표현이자 새로운 지적, 인간적 현실에 대한 절실한 인문학적 요청을 끌어안고자 하는 전신의 시도였다.

 

12쪽. 신자유주의 체제 최전선의 하나인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할 정도로 맹목적이고 순수한(?) '경쟁'을 강요한다. '(영어)논문'이 지상 최고의 글쓰기처럼 된 오늘날 대학에서 이런 '책'은 매우 홀대받는다. 더구나 이렇게 한가롭게(?) 공저 따위를 출판하는 일은 두 사람이 다 '가진 것 많은' 정규직이니까 가능한 일이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책의 '물적 토대'이다. 대학문화를 지배하며 한국 지성사에서 분명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만들고 있는 이 간교한 양과 돈 중심의 문화는 분명 심각한 연구거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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