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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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사고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은 마리아는 호숫가 별장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된다. 별장을 며칠 빌려 쉬려고 왔다가 시체를 처음 발견한 친구 카렌은 담당형사 에를렌뒤르에게 마리아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얘기하며 영매와의 교령의식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건낸다.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난 뒤 뭔가가 양심을 찌르는 거 같은 느낌에 에를렌뒤르는 마리아와 남편, 그 가족의 주변인들을 조사하며 평범하게 자살로 마무리 되는 듯했던 사건을 다시 파헤친다.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지명이나 인물 이름이 너무 입에 붙지를 않아서(사실 읽기도 어려웠다 ^^;;;) 좀 애로 사항이 있었다. 마리아의 사건이 메인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에를렌뒤르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죄책감의 근원인 동생의 죽음, 그리고 형사를 정기적으로 찾아왔던 부부의 아들이 끼어있는 미결 실종 사건을 함께 다루면서 에를렌뒤르가 결국 집요하고 끈덕지게 자신이 찾던 진실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목도 저체온증인 데다가 춥고 얼어붙은 호숫가가 계속 등장하고 게다가 사후세계 얘기까지 나와서인지 읽는 내내 뭔가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구성이나 문체는 다르지만, 또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범죄소설을 읽고 말았구나라는 것이었다. 이 책에는 사이코패스가 3명 등장한다. 마리아의 엄마인 레오노라, 남편 발드빈, 그의 내연녀 카롤리나... 왜 이렇게 범인들은 죄다 사이코패스인지, 세상이 이래서 소설도 이런 건지, 범인이 죄의식이나 두려움에 좀 떨면서 인간적(?)이면 안되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책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제일 나쁜 건 마리아의 엄마 레오노라다. 마리아에게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어린 시절 그런 끔찍한 기억에 죄의식까지 심어 주다니... 그에 대한 보상이랍시고 마리아를 그렇게 과보호하지 않았다면 발드빈 같은 놈하고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니 결혼했다고 해도 집착스러운 장모와 자기 아내의 관계에 질려 카롤리나와 불륜을 맺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여튼 마리아가 잘못된 건 다 엄마 탓이다. 마리아를 둘러싼 사이코패스의 물결 속에서 오로지 아버지만이 죽어서 혼령이 된 뒤에도 마리아를 걱정했다. 조심하라며, 넌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며 말이다.

그리고 에를렌뒤르도 그렇다. 오랫동안 애달프게 실종된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부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자신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노인한테 먼저 가야했던 거 아닌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노인의 아들 시신까지 발견했는데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노인에게 가서 아드님이 사랑에 빠졌었고 불의의 사고로 죽는 순간에도 사랑했던 여자와 함께였다고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표정 변화도, 일말의 반성도 없는 사이코패스들한테 달려가기 전에 말이다. 그들에게 먼저 달려가서 시원하게 수갑이라도 채웠으면 또 모르겠다. 에잇!에잇!에잇!

 

에를렌뒤르는 우연이란 삶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간악한 술책을 펴거나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연이란 비와 같아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바르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때로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을 형성하기도 했다. 우연이란 난데없이 등장했다. 예상치 못하게, 기이하게, 설명할 수 없게.

에를렌뒤르는 우연의 일치를 다른 것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경험상 그는 우연의 일치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를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 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저체온증』中 -

 

에를렌뒤르가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얘기 속에서 큰 접점을 찾아낸 순간을 묘사한 위의 내용이 가장 인상깊었다.

 

작가 인드리다손은 해마다 북유럽에서 출간된 미스터리 작품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유리열쇠상을 이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로 2회 연속수상했다고 한다. 유리열쇠상은 2번 받은 작가도 손에 꼽지만, 2회 연속 같은 시리즈로 수상한 것은 2017년 현재 안드리다손이 유일하다고 하니 미스터리 팬이라면 시리즈의 어떤 작품이든 한번 읽어보는 게 좋을 거 같다. 요 작품은 주인공의 삶, 그리고 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도 꽤 비중있게 다뤄지는 만큼 사건에 집중되어 질주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들은 인내심이 다소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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