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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컴퓨터로 열심히 딴짓 중이던 내게 방바닥에서 이 책을 발견하신 어무니가 나즈막히 의심스럽다는듯이 물으셨다.
'이 책은 제목이 뭐가 이러니?' '그냥 스릴러 소설이야. 재미있대.' '이게 소설이야?' '응응, 재미있다고 하더라구. 읽어볼라구.'
아무래도 책 제목에 놀라신 거 같았다. ^^;;;;
알라딘에서 이벤트 중이기도 했고, 자주 읽던 장르소설을 한동안 못 봐서 급 구입했다. 전에 읽었던 『걸 온 더 트레인』과 비교했을 때 더 재미있었다는 독자서평도 있고, 읽기 전까지 과연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근두근하고 있었는데... 다 읽고 나서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이전에 <덱스터>라는 미드가 있었다. 지금은 종영한 상태인데 어린시절 어머니의 잔혹한 죽음을 겪고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덱스터가 형사인 양아버지의 교육을 통해 낮에는 혈흔 분석가로, 밤에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단죄하여 자신의 살인 욕구를 채우는 좀다른 연쇄살인범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1시즌 밖에는 안 봤는데 덱스터가 무서운 범죄자로 느껴지기 보다는 참 애처로웠던 기억이 난다. 무고한 살생을 막기 위한 양아버지의 규칙과 규율 안에서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억누르며 진심과 진실을 나눌 친구 하나 없이 살아가는 그가 불쌍하고 그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괴롭히는 연쇄살인범이 미웠다. 그래 그랬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는 덱스터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위로해 주고 싶은 존재였달까. 이 책의 책지에 '어느새 당신은 살인자를 응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라고 적혀 있길래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덱스터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소설이 중반에 이르면서 머리는 복잡해지고, 당혹스러움만 남았지만 책을 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주인공 릴리와 미란다로 이름이 바뀐 페이스, 두 명의 여자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나는 이 두 명의 사이코패스한테 정말 짜증이 났다. 그리고 대체 어느 부분에서 릴리를 응원해야 되는 건지 묻고 싶었다. 릴리가 처음 죽인 쳇은 아동성추행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자유분방한 부모님 탓에 어떤 보호나 조치도 받지 못할 거 같은 어린 소녀가 직접 단죄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 다음 희생자인 에릭은 어떤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에게 100% 진실한 사람도 없다. 연인이 있어도 심지어 배우자가 있어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힐끗거리며 치근덕거리며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사람들을 모두 릴리 같은 - 나에게 상처 준 당신, 나는 당신을 죽임으로써 당신에게 상처받을 누군가를 구해주는 거야. 나는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지. - 기준으로 없애버린다면 전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다. 나는 작가가 주인공 릴리에게 부여한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대한 동기, 윤리적인 잣대 자체가 너무 공감이 되지 않았다. 릴리 같은 기준이라면 얼마 되지 않는 내 전(前) 남친 중에 2명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릴리의 희생자 중에 정말 죽어 마땅했던 사람은 이 소설 속 또다른 사이코패스인 미란다(페이스) 뿐이다. 에릭이 릴리에게 상처 준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도, 믿을 만한 시공업자였던 브래드가 살인자가 된 것도 모두 다 미란다 때문이었으니까... 미란다에게 작가는 나름 불우한 어린 시절과 허영기 가득한 어머니 등을 배경으로 쌓아주며 일말의 당위성이라도 주려고 했던 모양인데 남편 테드에 대한 그녀의 속마음을 봤을 때 그저 나쁜 X이고, 정말 짜증나는 캐릭터였다. 이렇게 보니 테드가 제일 불쌍하네. 사이코패스 부인에, 그 부인한테 상처받고 애정을 느낀 대상이 또다른 사이코패스니... 이쯤되면 사이코패스 감별사??? -.-;;;;;
이런 장르소설이 가져야 하는 긴장감은 좋은 편이다. 나도 앉은 자리에서 쭉 다 읽어버렸으니까... 다만 이 소설에서 얘기하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랑은 넘 멀었고, 그 부분이 넘 크게 마음에 걸린다. 죽여 마땅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이미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했을 때, 진짜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제대로 단죄받는 통쾌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대신 정말 죽어 마땅했을까라는 의문만 찝찝하게 남아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