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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철선 ㅣ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4년 5월
평점 :
잭 리처 시리즈를 장편으로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가장 최근 출판된 작품으로 선택한 『인계철선』. 마침 잭 리처 드라마 시리즈도 3시즌이 시작된 모양이던데 관련된 원작은 아니었다. 지구상에서 20초에 한 권씩 팔리고 있는 시리즈니까 기본은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 최남단 키 웨스트에서 수영장 파는 일과 스트립 바의 기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조용히 살고 있던 잭 리처에게 어느 날 그를 찾고 있는 사립탐정과 정체 모를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태연하게 자기가 잭 리처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모두를 돌려세웠지만,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도록 처리된 사립탐정의 시신을 맞닥뜨리게 되고 사립탐정의 의뢰인을 찾아 뉴욕으로 움직인다. 의뢰인으로 마주친 사람은 군 시절 멘토였던 가버 장군의 딸 조디였고, 가버 장군이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노부부의 부탁으로 시작한 조사는 리처뿐 아니라 조디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을 만드는데...

이런 장르의 시리즈물을 볼 때마다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대체 왜 악당들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가'다. 007을 잡으면 꼭 고문을 한다거나 말을 시켜서 도리어 죽음을 당하고, 추적이 코앞에 이른 것을 알면 당장 달아나는 데에 집중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아서 화를 자초한다.
『인계철선』의 악당도 그랬다. 이중, 삼중으로 경고 시스템은 뭐 하러 만들었나? 거기서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려대는데도 도망가지 않을 거면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의 악당들이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 다 그렇다, 구성 상에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악당들, 그런 구성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아무래도 초반부터 김이 새기는 한다. 이게 이런 시리즈를 계속 읽는 독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할 말 없지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악당이 어떻게 잡힐 것인가 보다 잭과 조디의 관계성, 그리고 잭의 정착 여부에 대한 게 더 흥미를 끌었다. 뭔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읽기였을 테지만, 나는 잭이 가버 장군의 유산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인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가 더 궁금했다. 물론 책은 악당이 사라진 시점에 마무리가 되어서 그 궁금증은 풀리지가 않았는데 정착된 보통의 삶을 사는 잭 리처가 상상이 안되기는 했다.
이후 출판된 작품에서라도 뒷이야기를 알 수 있을까 했는데 실제 쓰인 순서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순서가 전혀 달라 시리즈 중 『인계철선』의 바로 다음 작품은 우리나라에 출판되지 않은 거 같았다.

리 차일드도 영국 작가인데 잭 리처 시리즈를 읽다 보면 영국의 다른 장르 작가 작품들을 읽을 때랑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미국 헌병 출신의 주인공, 배경도 미국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 책과 존 리버스 시리즈인 『이빨 자국』을 같이 읽었는데 같은 영국 작가의 작품이라기에는 문체나 분위기가 좀 차이가 난다. 존 리버스 시리즈에서는 다른 영국 작가의 작품들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는 뭔가 다른 결이다. 좀 더 안정적이고 제너럴 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빨리 편하게 읽히는 거 같다.
아무튼 상대가 마동석이든, 007이든, 잭 리처든, 악당들은 제발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