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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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녀 규칙 조례】 中


잠 못 드는 긴 더운 밤이 괴로운 여름이다. 좋아하는 장르소설을 원 없이 읽기 괜찮은 시기이기도 하여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추천받은 책 3권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읽은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에서는 밤마다 모여서 괴담을 나누는 궁궐 내 모임에 같이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와서 밤마다 모여 듣는 괴담에서 즐거움을 찾는 궁녀들과 거기에 동참하게 된 어린 궁주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신기하기도 스산하기도 했다. 여름밤에 딱일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형제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 끝에 왕위에 오른 태종 때 경복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왠지 이런 일이 있을 법도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종은 자기 형제들뿐 아니라 고려 말의 정몽주, 그리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이런 태종이 얼마나 불안에 시달렸을지, 그리고 그런 그가 왕으로 있는 궁궐이라면 작은 건수라도 그의 부덕함을 탓하는 쪽으로 흐르기가 얼마나 쉬웠을지 짐작이 된다. 게다가 나중에는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였던 원경왕후의 궁녀들을 지속적으로 후궁으로 들여 사이가 나빠지자 교태전에 유폐하는데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은 딱 이 시기의 이야기다. 원경왕후의 여종이었다가 후궁이 된 효빈 김씨는 안상재의 효순궁주, 역시 왕후의 나인이었다가 후궁이 된 신빈 신씨는 휘영당의 신녕궁주로, 이야기 속에서도 역사에 기록된 관계와 흡사하게 등장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사극에서 궁녀들은 그저 주변인이다. 웃전의 상황,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크게 각인되는 이름 없이 사라진다. 그런 그녀들이 궁에 좀 더 오래 안전하게 머물기 위한 지침서인 【궁녀 규칙 조례】를 꼼꼼하게 읽으면 책 내용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작가도 언급했다시피) 궁녀판 <여고괴담>의 느낌도 있다.

나라가 바뀌었어도 궁녀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노아, 원래 경복궁 자리에 있던 양반집 아가씨였던 백희, 두 사람을 따르는 어린 궁녀 연홍과 장미, 그리고 공주인 경안궁주, 이렇게 다섯 사람은 온 궁궐이 계속 울어대는 부엉이를 쫓느라 정신없는, 팔월 닷새에 우연히 모여 이후로 괴담을 나누는 모임을 지속한다. 괴담 속에 자기의 비밀을 녹이기도 하고 궁궐 내의 불편한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음 권을 위한 떡밥을 던지듯 마무리된다. 더불어 외전에서는 【궁녀 규칙 조례】가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시리즈의 두 번째 단행본이라는 『이름 없는 여자들의 궁궐 기담』에서 마지막에 등장한 강수가 백희와 어떻게 얽힐지 궁금했다.

역사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더 즐겁게 읽을 거 같다. 덥고 긴 여름밤을 조금 더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부담 없는 책을 찾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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