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문학동네 청소년 68
문이소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이야기라서 일 거다. 때로는 가슴 아리고 슬픈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 찢어지게 웃어서 눈물 나는 이야기일 때도 있다. 매일이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은 그런 일상의 작은 변화로 나름의 모험을 겪는 (범상치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소녀 농부 깡지와 웜홀 라이더와 첫사랑 각성자」, 「젤리의 경배」, 「유영의 촉감」,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 이 총 5편의 이야기는 제목만 보고는 대체 무슨 내용인지 정말 가늠이 안 되었다. 왠지 『오즈의 마법사』가 연상되었던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은 아무런 유사점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우선 제목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보고 그게 철저하게 배신당하는 경험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로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해


"누구긴요, 나한테지. 내가 나로 살아봐서 아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내가 보기보다 거칠게 살았답니다."

- 「젤리의 경배」 中


가끔 일을 하거나 뭘 만들거나 하면서 한 번씩 깨닫는다. '나로 사는 거 참 피곤하구나'라고... 특이점이 온 자아를 갖게 된 초지능 AI를 만난 -그저 좋아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고단한 작가-젤리는 죽을 때 '비명 대신 자신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수' 있도록 앞으로 열심히 제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그래, 우리 모두는 그럴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을 거다. 특히 「젤리의 경배」는 그런 나를, 당신을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 다정함을 잃지 말아 줘


놀랍게도 슁젠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다. 자신의 생김새를 보려면 굴곡 없이 매끄럽게 빛을 반사시키는 '거울'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타 개체의 꼬라지에 대해 말이 많은가 보다. 본디 자기 자신에 대해 무지할수록 타 개체에 대해 쉽게 떠드는 법이다.

- 「유영의 촉감」 中


스무 번째 나는 열아홉 번째 내가 남긴 '유영의 촉감'이라는 기억을 계승하여 온전한 내가 되려는 여행을 떠난다. 다양한 생명이 들끓고 있는 행성에 도착하여 생명체에게 슁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탐험하던 중 예기치 않게 유영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만난 유영이 선대가 남긴 유산과 관련이 있는지에 집중하던 나는 그녀 덕분에 촉감뿐 아니라 다채로운 감정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함께'라는 걸 깨닫는다. 


난 인간이란 본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간사한 존재이며, 자기보다 약한 것에는 무한히 잔혹하게 구는 존재임을 증언했다. 배신과 망덕은 인간의 특성 아닌가. 하지만 여사는 한때 나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대걸레 마녀는 아니지 않냐며, 모든 인간을 똑같이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 中


봉지 기사는 출산 중에 사망한 누더기 여사의 살아남은 막내를 대걸레 마녀가 데려가자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한 회의와 배신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막내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수리 기사로 위장하여 마녀의 집에 잠입한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캐릭터들의 정체를 제대로 알게 되는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은 단편적인 경험 때문에 몸도 마음도 뾰족해지지 말라고 말하는 거 같다.



인간은 거울이 있어야만 자기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주제에 타인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떠든다. 더불어 상처와 슬픔의 되새김질로 스스로를 옹졸하고 편협한 시선에 갇힌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정함과 배려로 진화의 정점에 오른 종이다. 그런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좋은 점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두에게 기운을 잃지 말라는 따뜻한 격려를 이야기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를 '낭만 채집가'라고 말하는 문이소 작가의 이 책은 여러 가지 어지러운 감정을 소소한 이야기, 대책 없는 낙관과 긍정으로 잠재우고 싶은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국가 기밀로 두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