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자인 나는 인터뷰를 위해 보도사진을 찍은 젊은 사진작가 권은을 만난다. 기사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녀와 두 번째 만남을 가진 후, 나는 권은과 연결된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 낸다. 우연한 만남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유년 시절부터 연결되어 있었고, 반장인 내가 팔아 쓰는 물건으로 도움이 되라고 준 필름 카메라가 온기 없는 가난한 방의 권은에게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끈이 되었다. 결국 권은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 그 '빛의 호위' 속에서 살아남았다.

조해진의 소설집 『빛의 호위』는 권은과 기자인 나의 이야기 「빛의 호위」를 비롯하여 총 9작품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빛의 호위」와 병약한 동생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한 언니에 대한 가슴 아린 부채감이 드러난 「잘 가, 언니」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그에 휘말린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사물과의 작별」, 「동쪽 伯의 숲」, 구조조정, 파업, 산업재해 등을 이유로 실직한 뒤 생활고와 깊은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그린 「산책자의 행복」, 「시간의 거절」, 「작은 사람들의 노래」,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으려는 서영으로 인해 한국을 찾은 '문주'와 '니나'라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진 입양아의 이야기 「문주」 등 『빛의 호위』에 담긴 작품들 속에서 작가는 배경이나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고단하고 복잡한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 접한 작가였는데 역사적인 사건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자신만의 방식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인물들의 심정을 중심에 두고 이를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더 공감이 되고 어떻게 전개될지 더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더불어 언뜻 두 명의 화자의 개별적인 이야기처럼 전개되다가 종국에는 자연스럽게 독자 안에서 하나로 합쳐지게끔 되어있는 스토리텔링-「동쪽 伯의 숲」의 희수와 발터, 「산책자의 행복」의 메이린과 라오스, 「시간의 거절」의 석희와 제인-도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 너는 아직 아이니 모르겠지. 살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죽음은 유감이 아니야. 슬픔은 더더욱 아니고. 내 장례식은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파티야. 그 마지막 파티에서 사람들이 나를 흉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지금 내가 바라는 전부지.


- 『빛의 호위』 中 p.141 (「산책자의 행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