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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추혜인 지음 / 심플라이프 / 2020년 9월
평점 :
지난 크리스마스에 니은 서점이 이벤트 중이었을 때 방문해서 2권의 책을 사고 부직포 파우치를 비롯한 선물도 받아왔다. (마스크팩까지 선물로 주실 줄은 몰랐다. ㅋㅋㅋ) 그때 구입한 책 중에 한 권이 바로 이 『왕진 가방 속에 페미니즘』이었다.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의 가정의학과 의사라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 동네에 이런 데도 있었나라는 궁금증에 선택했는데 다 읽고 나니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이 병원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의사분 덕에 뭔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공학도였던 저자는 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하다가 진로를 변경하여 의사가 되었다.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의대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살림의원'에 근무하면서 만나고 치료한 사람들의 이야기, 왕진을 시작하게 된 이유 등을 이 책에서 듣게 된다. 더불어 더 나은 의사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고심하는 저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여러 추천사 내용처럼 읽는 동안 눈물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자기만의 싸움의 기술을 전수하거나 동네 목욕탕에서 맘 편히 씻지도 못하는 저자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3,200세대가 넘는 조합원들이 함께 의원, 치과, 건강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통합돌봄센터를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안심하고 나이들 수 있는 마을,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의료 관련으로도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무엇보다 이런 조합과 의원이 존재하면 더 이상 마음에 맞는 의사나 병원을 찾아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전에 우스갯소리로 다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게 되면 한 건물에 모여살자는 둥, 아침마다 방문을 두드리는 정도로라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자는 둥의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마을이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
영화에서나 봤던 왕진, 그런데 우리 동네에 왕진을 다니는 의사가 존재했다. 덕분에 몸이 불편하거나 이동이 어려운 환자와 그 보호자들도 치료와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고, 집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 보호자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속성을 갖는 것도 가능했다.
공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증의 이유를 찾아내 이름 붙이는 건, 그래서 환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건 오직 의료인만이 할 수 있다. 통증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는 '적절한 진단적 공감'이 필요한 때가 있다.
-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p.202
때때로 통증은 제대로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 공감을 얻는 것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다. 잘 치료해야지 보다 환자들의 아픔에 잘 공명해야지를 먼저 고민하는 저자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