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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재수.오은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2월
평점 :
창작과비평 클러버 활동 중에 가끔 클러버 서평단 모집 공지가 올라온다. 지난번에 『스노볼』도 그렇게 만났는데 이번에는 『마음의 일』을 읽게 되었다. 친구 사이라는 만화가 재수, 시인 오은 작가가 함께 그리고 쓴 그림 시집이라는 점이 끌렸고, 연필 질감이 듬뿍 느껴지는 컷 그림이 시와 어떻게 어우러졌는지도 궁금했다. 팀플레이는 참 쉽지 않은데 두 사람은 이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친구가 된 거 같다고 느꼈다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


책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책을 다 읽으면 결말을 알 수 있겠지만
책을 아무리 읽어도
정작 우리는 책이 아니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음 장에 무슨 풍경이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다
- 「딴」 中
『마음의 일』 속에서 무거운 가방을 멘 청소년기의 나를 만날 수 있는데 읽다 보면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우리는 앞으로,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어디까지 자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딴짓을 하고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책의 주인공 때문에 마음 졸이기도 한다. 나나 잘해야 하는데... ㅎㅎㅎ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했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이 늘 꼭 붙어 다니라는 말은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사이를 적당히 둬야 상대가 더욱 잘 보였다.
인간은 사이[間]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거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 『마음의 일』 中 p.90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그 관계가 오래간다는 건 나이를 먹을수록 크게 깨닫는 부분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알고 싶을 때 숨을 고르고 한 번씩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뜬금없는, 다소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연락에 짜증이 나는 건 아직 마음이 더 자라야 하기 때문일 거다.
괜찮지 않을 때는 최대한 괜찮지 않다고 말해보리라 다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고 여전히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며 스트레스 받는 자신을 발견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괜찮은 척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클까, 괜찮지 않을 때 괜찮다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더 스트레스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하던 대로 살아야 하나보다 했었다. ^^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심장이 뛸 때마다
속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발끝에 고인 눈물이
굳은살로 박이는 아침
바깥이 밝다고
안까지 찬란한 것은 아니다
- 「아침의 마음」 중
우리 사회는 특히 감정,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을 미성숙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마음을 드러내는 건 이상하거나 미숙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내 마음이 따뜻해질 때도 많다. 감정을 숨기면 결국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상처받거나 주기 싫다고 감추기만 하면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무감각한 거리만 남는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고 잘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중요한 순간의 감정, 마음을 너무 꼭꼭 숨기지는 않아도 된다. 그게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말이다.
『마음의 일』은 규정할 수 없는 책이다. 시집이기도 하고 만화책이기도 하고, 그림책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이야기인 거 같지만, 어른들에게도 유효하다. 그땐 그랬지 싶다가도 여전히 이런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 마음은 계속 자라고 어떤 마음은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해서일 거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아직도 -프롤로그에서처럼- '선선히 움직이고', '기꺼이 방황하고',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를 만난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