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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평점 :
작가도 제목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감능력결핍, 인간관계, 응원하게되는, 잔잔한감동'이라는 키워드만 보고 응모한 사전 서평단을 통해 받은 도서는 예상치도 못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정말 표지에 텍스트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ㅎㅎ ㅎ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랑 사는 노라는 새아버지가 될 사람과의 인사 자리에서 동갑내기 모라를 만난다. 계부의 사업 실패로 어머니와 이혼할 때까지 7년을 자매로 함께 살았던 두 사람. 아무런 기약 없는 헤어짐 뒤에 중학생이던 노라는 어느덧 직장을 다니는 나이가 되었고, 6년을 다니던 광고 회사에서 종묘(種苗) 회사로 이직하여 근무하던 어느 날, 같은 번호에서 걸려온 네 번째 전화에서 모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 말할 수 없는 마음, 말해봤자 소용없을 마음
노라와 모라는 둘 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취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통이 되지 않는 어머니에게 지친 노라는 말해 봤자 소용없을 마음이기에 마음을 닫았고, 어머니가 도망간 후 아버지와 살 수 있는 여력도 안되었던 모라는 살아남기 위해 마음대로 말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더 이상 나빠지면 안 되기에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괜찮다며 노력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기에 체념하고 그냥 조용히 있었다. 결국 그런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집에 살았어도 아무런 마음도 나눌 수 없었고, 다시 재회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과거의 상처를 곱씹고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차라리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어린애답게 머리채라도 잡고 속시원히 싸우거나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했으면 재회한 터미널에서 따뜻한 포옹 정도는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비슷한 결핍이 있는 노라와 모라가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읽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각자의 삶이 있지만,
노라가 말해봤자 소용없을 마음이기에 입을 닫은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이 있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다. 각자의 인생이 있다. 하지만, 엄마이기에 혼자의 인생 이전에 엄마로서의 인생을 생각했어야 했다. 여기에 모라의 아버지는 노라의 엄마와는 다른 형태의 문제 아빠였다. 이혼한 뒤에 모라가 16년을 고아로 지냈어야 했던 건 어떤 변명이 붙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부모가 무조건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부모만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한 생명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인간의 자식은 어떤 동물보다 무능력하게 태어난다. 어느 정도의 능력이 생길 때까지 잘 케어해 줄 생각이, 아니 마음이 없다면 자식을 낳아서는 안되는 거다. 거기에 내 인생 운운은 정말 코미디고...
…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뭘 모른다는 무구함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더는 순진과 무구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나이가 온다. 가슴이 답답해서 손바닥으로 명치 끝을 문지른다.
- 『노라와 모라』 中 p.89
노라와 모라에 집중해야 되는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행태에 화가 나서 그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 다행인 건 노라의 새로운 직장이 그녀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거 같고, 모라의 지친 일상에도 이웃과의 교류가 생겨났다는 거다. 사전에 주어진 키워드대로 노라와 모라 두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모라에게 노라가 나쁜 년인 순간이 있고, 노라에게 모라가 마냥 부럽기만 한 순간이 있지만, 두 사람은 이제 서로가 그저 서로인 걸 인정하고 어설프지만 조금은 마음에 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거다. 모라가 '이유를 묻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마음들' 때문에 묻고 또 묻기로 하고, 노라가 사는 '재미'에 나름의 정의를 갖고 모라를 떠올리는 걸 보며 두 사람의 진짜 마음은 이제 조심스럽게 세상으로 나오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