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기후변화로 혹한기만 지속되는 지구, 나라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일부 사람들은 스노볼이라고 불리는 따뜻한 지역에 살며 액터, 디렉터 등으로 나뉘어 24시간 리얼리티 드라마를 제작 방영하면서 살아간다. 그 밖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노볼로부터 물자를 지원받는 대신 인력 발전소의 자원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일을 하면서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열일곱 생일을 앞둔 전초밤은 언젠가 필름 스쿨에 들어가서 디렉터가 되기를 꿈꾸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동네 왕따나 다름없는 전직 액터 조미류를 구하던 날 최고의 디렉터 차설의 방문을 받는다. 전용 채널까지 가진 최고의 액터 고해리를 키워낸 차설은 초밤의 꿈을 걸고 엄청난 제안을 한다.

 

 

우리는 어쩌다 한 번씩 사람들이 좀 말이 안 되는 -말이 안 되게 좋거나 이상한- 조건의 일들에 별다른 고민 없이 응하는 걸 보곤 한다. 그런데 그런 선택은 대부분 초반의 장밋빛과는 다른 골칫거리로 남게 된다. 하소연을 들으면서 생각한다. 애당초 모든 조건과 상황을 종합해서 그런 선택이 위험하거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걸 말이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어쨌거나 그런 조건으로 상대방을 현혹하고 결국에는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여기에 좀 다른,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바로 기회, 혹은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심. 초밤이의 꿈은 필름 스쿨에 들어가 디렉터가 되는 거였다. 불합격 통지서를 연속으로 받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계속하다 보면 기회가 생길 거라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전초밤은 그런 사람이었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안주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무엇보다 그녀를 목숨 걸고 지켜주려는 소중한 가족이 있는... 이걸로 충분했는데 차설이 제시한 해리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그녀는 꿈이 아니라 욕심을 택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꾸던 꿈과 다르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더 이상 식구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그런데 꿈이랑 욕심은 다르다. 초밤이의 꿈은 디렉터가 되어 사람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자신만의 드라마를 만드는 거였지 짜여진 삶을 살면서 부유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여생을 마치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완전히 지우면서까지는 아니다. 기회가 올 때 잡는 건 맞지만, 그게 적절한 기회인지 화를 부를 과한 욕망인지는 잘 구분해야 된다. 얼핏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그 둘의 구분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초밤이가 소명이를 만났을 때 그걸 확실히 깨달았기를 바랐다. 그런 그녀와 친구들의 작은 쿠데타가 기형적인 체제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지만, 대안을 찾는 좋은 출발은 될 거다.

 

… 내일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허상을 흉내 낼 필요도, 나의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일의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또 다음 날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 『스노볼』 中 p.434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다른 포장지를 두른 욕심을 골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열일곱이 된 초밤에게는 더 혼란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속이 후련해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이야기는 완전히 열려 있다. 초밤, 소명, 시내, 차향, 그리고 독점적 미디어 그룹의 후계자 본회가 보여 줄 세상은 그전보다 쪼금이라도 나아지기를...

Dear. 초밤

 

초밤아, 너는 너로 살면 돼.

그게 제일 어려우면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점점 더 느끼게 될 거야.

다시 초밤이로 돌아온 걸 환영해. 네가 방송국에서 보여준 기백이면 이제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게 무엇보다 기쁘네.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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