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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박찬욱 감독 때문에 알게 된 작가 세라 워터스. 작품을 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영화화된 건 제외하자고 생각하고 고르게 된 『나이트 워치』. 역자는 이 작품으로 저자가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는 자신의 안방(?)을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개척했다고 하는데 저 안에서 스릴러만 빠진 거라고 생각된다.
전쟁, 그리고 그 후의 영국 런더너 6명이 겪는 사건, 관계 변화를 그려내는 이 작품은 1947, 1944, 1941년의 역순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굳이 그런 구성이었어야 하는가 싶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자극되는 부분이 있다. 다 읽고 나니 마지막 챕터부터 거꾸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작가가 쓴 감사의 말에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참고로 한 어마어마한 서적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마치 논문 같았던 소설 『왕국』이 생각났다. 전쟁, 그 후의 사건이나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 나름의 조사가 얼마나 꼼꼼했는지 느낄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작가가 묘사하는 당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즘 우리가 겪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밤낮 없는 비행기의 공습이나 폭탄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그만큼 두려운 코로나를 상대하고 있다. 당시에 어두워지면 시행했던 등화관제, 공습 경비원, 대피소 등 위협받는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들은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그리고 재난문자 등과 비슷하고, 일부 구하기 어려운 물품들이 생기는 상황도 닮았다. 그래도 저 시대에는 거리낌 없이 서로를 따뜻하게 꽉 안을 수라도 있었으니 더 낫지 않았을까.
한 가지 우스웠던 건 위급한 상황에서도 말투로 구분되는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였다. 어디선가 영국은 여전히 아주 견고한 계급 사회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태도로 그들 스스로 그런 사회를 아주 공고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편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쉽게 읽히는 편이다. 전쟁 같은 큰 사건에는 모두가 그 자체에 집중하지만, 그 시대를 버텨서 사회와 세상을 유지해 나가는 건 그 속을 적나라하게 겪어낸 사람들이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드라마틱 하지는 않더라도 모두 크고 작은 나름의 사건을 겪어낼 수밖에 없는 큰 시련 안에 있으니까, 우리의 지금도 그렇다. 세라 워터스가 그려낸 20세기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면서 우리의 다음 챕터가 조금 더 희망적이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