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니 한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 칙릿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이 한 번씩 읽고 싶을 때가 있다. ^^ 동명의 넷플릭스 콘텐츠가 히트를 쳤고, 속편도 만들어진 건 알고 있었다. 전혀 생소한 책을 고르는 것보다는 그래도 영화화된 작품을 고르는 게 안전할 거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한국계 미국인 엄마와 백인 아빠 둔 마고, 라라, 키티, 세 자매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든든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화목하게 지낸다. 마고 언니의 스코틀랜드 대학 진학으로 겪을 변화를 걱정했던 라라는 언니가 남자친구인 옆집의 조시 오빠와도 헤어지고 떠난다는 걸 알게 된다. 라라는 언니의 부재 속에서 착한 동생, 믿음직한 언니, 딸의 역할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썼던 편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발송되었다는 걸 알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개인적으로 조시, 피터, 제너비브 때문에 짜증이 났다.
 

| 사람 헷갈리는 조시

조시는 라라에게는 친오빠나 다름없었다. 마고랑 사귀기 전에 라라는 조시를 좋아했지만, 맺어진 다음에는 다른 짝사랑남들과 똑같이 편지를 쓰고 마음을 접었다. 언니가 떠나고 둘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조시를 어떻게 포지셔닝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그런 상황에서 조시에게 자신이 썼던 편지까지 전달되었다는 걸 알고 피터와의 계약 연애를 통해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 한 라라. 그런데 알고 보니 조시도 마고랑 사귀기 전에 라라를 좋아했다는 것, 그래 여기까지는 조시의 마음이 그랬었다는 거니까 이해를 하자. 문제는 피터랑 사귀는 라라 진에게 굳이 그걸 알려주고 키스까지 했다는 거, 최악은 라라 진이 스키 여행을 다녀온 후 가장 괴로운 시점에 피터와의 말다툼으로 이 모든 일을 전 여친이자 라라의 언니인 마고가 알게 했다는 거... 조시는 어쩌면 제일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괜찮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며 그걸로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상처 주는 사람 말이다. 
 

|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피터

이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은 피터다. 잘생긴 인기남 피터에 대해 일종의 편견 같은 게 있었던 라라는 계약 연애를 통해 진짜 피터와 피터의 친구들을 겪으며 이들이 사람들의 쑥덕거림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가 라라 옆에 있었으면 말해줬을 텐데 어떤 이유든 전 여자친구를 계속 곁에 두고 관계를 유지하는 피터는 괜찮을 리 없다는 거 말이다. 아무리 피터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믿어도 말이다. 피터의 전 여자친구 제너비브가 이전에 피터와 잠시 사귀었던 저밀라에게 저지른 만행을 얘기했을 때 그럴 리 없다고 피터가 부정하는 순간, 이 관계가 가망이 없다는 걸 라라가 알았어야 했다. 나는 마지막 피터에게 진짜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하는 라라에게 그만두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국민 XX, 제너비브

왜 이런 이야기 속에 꼭 볼 수 있는 얼굴만 예쁜 인성 개차반의 거지 같은 여자 조연이 없나 싶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못된 X인지 여실히 보여 준 제너비브... 쯧... 스키장에서 나눈 라라와의 대화 안에서 얘가 삐뚤어진 데는 뭔가 가정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세상에 나름의 사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라라는 화장실에서 제너비브의 머리채를 잡았어야 했다.

여기에 솔직히 말하면 라라의 언니 마고도 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장녀라서 첫째가 가진 부담감에 정말 잘 공감하는 편이다. 엄마의 부재를 동생들이나 아버지가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는데 그래서 굳이 스코틀랜드까지 갈 필요가 있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뭔가 독립적으로 좀 더 강해져야겠다는 의지는 그냥 옆 동네 대학 기숙사 정도로도 보여줄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말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캐릭터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 때문에 짜증이 올라오는 중에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나 같아도 이 책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고 싶었을 거라는 거였다. 가슴 조이는 긴장감이나 서스펜스 없이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적절히 궁금해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여기에는 등장하는 라라의 가족들이 한국의 가족과 문화를 공유하고 유지하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배경이 한몫하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도 라라의 자매들, 아버지까지 모두 음식, 친척들과의 교류 등으로 한국과의 끈을 이어 간다.

게다가 나는 정말 싫어하는 방식이지만, 이 책은 복합적인 감정이 폭발하는 제일 미칠 거 같은 순간에 끝이 난다. ㅎㅎㅎ 미드 볼 때도 시즌 피날레가 이렇게 끝나면 정말 짜증이 났는데 말이다. '그래서 뭐야?!'하는 순간에 끝나면서 속편에 대해 언급하는 작가의 말이 나온다. 궁금하면 속편을 읽으라는 거지. 좋게 말하면 작가가 영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찾아보니 속편이 2권이나 있다. :)

 

누군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처음에는 하고 싶은 얘기들을 잔뜩 쌓아둔다. 모든 걸 기억해 두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건 손바닥에 모래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 그 작은 알갱이들은 모두 손을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빈주먹만 꽉 쥐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모든 걸 쌓아두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서로 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큰 안부만 주고받게 된다. 작은 것들까지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큰 수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만드는 건 그 작은 것들이다. 한 달 전에 아빠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졌던 일처럼 말이다. …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中 p.337

코로나로 인해 그냥 만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돌아온 마고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는 라라의 말처럼 삶을 만드는 건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들인데 우리는 이제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더라도 서로 삶의 진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게 너무 어렵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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