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블루 컬렉션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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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누군가 오타를 연필로 수정해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읽으면서 거슬린 모양인지 연필로 다 표시해서 고쳐놓았더랬다.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도서관 책인데 이것도 낙서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 흔적을 남긴 누군가를 살짝 궁금해했었다.

『밑줄 긋는 남자』에서 주인공 콩스탕스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연필로 적힌 책 추천의 문장을 발견한다. 그래서 빌린 다른 책에서는 밑줄 그은 문장들을 발견하는데 그 문장들을 조합하며, 이름도 얼굴도 아무것도 모르는 밑줄 그은 사람을 남자라고 생각하고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는 밑줄 그은 사람과 상상 속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콩스탕스가 그저 웃겼는데 그런 상황에 지쳐가는 그녀를 따라 점점 밑줄 그은 사람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콩스탕스처럼 빌린 책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책 추천을 받으면 궁금해서 그 책을 찾아볼 거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 책의 추천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은 아무나 하지는 않겠지.

밑줄 그은 사람을 궁금해하던 콩스탕스는 그가 볼 만한 책에 자신도 밑줄을 긋고 실제로 만날 일을 생각하며 그의 가운을 사두기도 하고, 그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도서관에서 천천히 걸어 돌아오기도 하다가 결국 편지를 써서 도서관 사서 지젤에게 맡기는 지경에 이른다. 지젤이라면 밑줄 그은 사람을 짐작이라도 하고 있을 거라는 판단인데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이게 무슨 짓인가라는 생각만 했다. ㅎㅎ

 

사람들은 용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 『밑줄 긋는 남자』 中 p.121~122

무엇보다 내가 아쉬워했던 것은 아마 꿈꾸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어떤 서점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서점 안에는 뭐든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탐탁지 않기로서니, 그게 무슨 상관이랴. 서점에 가면 다른 삶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 않은가.


- 『밑줄 긋는 남자』 中 p.122~123


콩스탕스는 자신의 삶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우연히 빌린 책에서 본 한 줄의 문장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중간에 이런 생각이 망상이라는 판단으로 그만두려고도 하였으나 한 번 그녀 안에 자리 잡은 열망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고, 소설가와 그 작품에 쏟았던 애정은 실제 사람과의 사랑에 대한 욕구로 시들해져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밑줄 그은 남자에 대한 추적과 열정은 결국 진짜 사랑으로 그녀를 인도한다.

'그래서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나 했던 이야기는 밑줄 그은 사람에 대한 집착이 그녀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옮겨가는 상황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반전을 꾀한다. 클로드가 그 지경에 이른 건 콩스탕스 탓이 크다. 물론 나도 밑줄 그은 사람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지만, 이 둘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반복되는 특별할 거 없는 일상에 작은 의외성이 끼어들면 그게 재미를 주기도 하고 활력이 되기도 한다. 스물다섯 살의 콩스탕스는 이미 죽은 소설가와 사랑에 빠졌고 그의 작품도 열심히 읽었지만, 밑줄 그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결핍을 인지하고 그것을 제대로 채우기 위해 행동했다. 우연히 만난 작은 의외성을 그냥 두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열의를 발휘한 덕에 자신이 꿈꾸던 사랑으로 일상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진이 빠지고 때로는 말리고 싶은 순간들 투성이였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이 정도가 아니면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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