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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마야는 어머니가 자신을 아일랜드 서점에 두고 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정 나이가 되는 모든 애들한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들은 신발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장난감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샌드위치 가게에 남겨진다. 그리고 인생은 어떤 가게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다. 마야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살고 싶지 않다.
- 『섬에 있는 서점』 中 p.109
두 살의 마야는 앨리스 섬의 하나뿐인 서점 아일랜드에 혼자 남겨진다. 아내인 니콜을 잃고 역시 홀로 남은 서점 주인 에이제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마야를 입양해서 정성으로 돌보기 시작한다. 무기력하고 시큰둥하기만 했던 에이제이의 일상은 마야로 인해 활력을 찾고 서점, 고객, 그리고 출판사 영업 사원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면서 관계의 범위도 확장되어 나간다.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 『섬에 있는 서점』 中 p.119
『섬에 있는 서점』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책의 만남... 섬에 있는 단 하나의 서점을 배경으로 서점의 주인이 거기에 버려진 아이, 그리고 자신이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경찰 랩비에이스를 비롯한 섬의 주민들, 그냥 사무적으로 때로는 무례하게 대했던 어밀리아 같은 출판사 사람들과 교류하며 더불어 책으로 교감하고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 안에 로맨스도 있고, 나름의 서스펜스도 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납득되지 않는 나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 이즈메이의 남편 대니얼이 있기는 있다. 결혼한 순간부터 임신한 부인을 두고까지 계속 바람피우는 그냥 나쁜 놈! 이즈메이가 좀 더 빨리 그런 남편한테 벗어났으면 좋았을 테지만 사실 그랬으면 이 이야기는 시작될 수도 없었다. ^^
이 책의 제일 좋았던 부분은 매 챕터 앞에 있는 마야에게 남기는 아버지 에이제이의 추천 작품과 유머러스하고 애정 어린 추천사였다. 에이제이가 작가의 길을 걸어갈 게 분명해 보이는 딸 마야한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인 이 작품들을 딸은 아니지만 목록으로 만들어 두고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 이즈메이.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 『섬에 있는 서점』 中 p.308
어릴 때 읽기를 너무 못한다는 선생들의 말에 독서 습관을 들이지 못했던 램비에이스는 에이제이를 만나 아일랜드 서점에 드나들면서 범죄소설을 읽는 경찰들의 독서 클럽까지 만든다. 그리고 책을, 서점을 사랑하게 된다. 어느 동네 책방 지기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너무 흔히 접하는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이 오히려 책을 읽지 않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책들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흥미를 잃으면 독서 전반에 대해 부정적이 된다는 것이다. 나의 청소년기 독서는 그런 권장 도서 목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내가 마음이 끌리는 책을 골랐고, 그런 책을 읽는 데 크게 간섭받은 적이 없다. 이건 정말 행운인 부분이다. 입시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서 수능에 나올 수 있다는 작품들을 짧게 요약해서 모아둔 책을 읽기는 했는데 그런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그런 작품들은 지금도 별로 읽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고... ^^;;;
사회적 거리두기 지속되면서 도서관 이용은 다소 불편해졌지만, 나는 취재를 핑계 삼아 잘 몰랐던 동네 구석구석의 책방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책도 만나고 있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 안에 작가가 나름의 떡밥과 복선을 만들어 두고 그걸 결말까지 매끄럽게 연결하여 마무리 짓는 게 감탄스러운 작품이었다. 표지와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좋은 의미에서 다른 면이 있는 책이었다. 대형 서점에서는 어디 있는지도 몰랐을 수 있었을 책을 이렇게 만난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을까? 동네라고 할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좀 슬플 거 같다. 앨리스 섬의 아일랜드 서점이 지속 가능해진 것처럼 각각의 개성으로 무장한 정겨운 동네 책방들이 오래오래 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