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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평점 :
애니는 외롭고 고달팠다. 일찌감치 부모 노릇에는 관심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상처받고 나름의 방식으로 애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어머니, 불의의 사고로 생긴 상처, 그 상처 때문에 벌어진 야반도주, 약화된 자존감으로 인한 도피성 결혼, 그리고 지키지 못한 아기... 그러나 기적처럼 첫사랑 파울로와 재회하고 비로소 행복한 가정을 꿈꾸게 된다. 결혼식을 마치고 기분 좋게 호텔로 향하던 두 사람은 타이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톨버트를 도와주게 되고 궂은 날씨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행한 선한 일로 인해 다시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애니는 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왔다. 부모님을 화해시키려던 초콜릿 때문에 아버지에게 빰을 맞았고, 그 일로 놀란 어머니는 애니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참지 않고 아버지를 쫓아 버렸다. 사고를 당한 이후에 벌어진 야반도주로 친구들까지 모두 잃었고, 어렵게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파울로는 이민 때문에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조산으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첫아이, 그 아이 때문에 결혼했다며 혼인 무효를 주장했던 첫 남편 월트,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했던 어머니도 암으로 그녀를 떠났다.
이런 애니가 행복해졌으면 하지만, 이 소설은 애니의 죽음을 예고하며 시작된다. 가장 행복한 결혼식 날, 죽음은 당연히 기대 밖에 있어야 하나, 그동안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애니는 너무나 행복한 순간임에도 기습적으로 엄습하는 불안감을 한 번씩 체감하는데 결국 그 불안감이 맞았던 것인지 그녀는 결혼식을 치른 다음 날, 천국에 이른다.
읽으면서 애니의 외로움, 고통, 두려움 등이 그대로 느껴졌으나 그렇다고 마냥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애니는 천국에서 자신과 관련된 다섯 영혼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깨달음, 위로를 얻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실수투성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그저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불행하기만 하다고 느꼈던 순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미처 살피지 못한 희생과 넘치는 애정도 있었다.
"우린 치유하기보다 상처를 안고 있으니까. 다친 날은 정확히 기억해도 상처가 아문 날은 누가 기억하겠니?"
-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中 p. 176
슬픔, 상처 등 부정적인 기억이나 감정은 빨리 잊으면 좋으련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기쁨보다는 괴로움에 매달리게 태어났나 보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애니도 행복한 순간보다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자신의 마음 대부분을 내어주고 있어서 더 괴롭고 힘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느꼈을 때, 감정의 문을 닫고 일에 몰두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감정이나 사람 대신에 일에 있어서 실수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시간이었다. 파울로를 다시 만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이야기 안에서 애니 스스로가 실수라고 생각하는 경험들에 '애니, 실수하다'라는 타이틀이 계속 붙어있는 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이 타이틀은 오히려 이게 실수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하거나 잘못했다고 느낄 때, 보잘것없다고 느낄 때, 그게 그저 그 순간의 기분임을 인지하고 그보다 나아지기 위해 내가 들이는 노력을 더 기억하라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영혼은 애니에게 실수나 잘못은 없다는 것- 누구나 살면서 만회하거나 보상하게 된다는 것 -, 그녀가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했으나 그녀의 삶 속에 무수한 애정과 행복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 모두의 인생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녀가 타인과 자신, 모두와 화해하며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은 이 소설에서 다시 죽음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한다. 애니와 다섯 영혼과의 대화를 보면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애니가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지만 말이다. ^^ 애니가 온전한 평온함을 얻은 순간에 왠지 나는 눈물이 났다. 슬픈 일이 휘몰아치는 부분들에서는 멀쩡하다가 비로소 모든 두려움과 상실을 그저 겪어내면 되는 것으로 담담하게 전하는 애니의 마지막 말에 울컥한 것이다. 천국이 어떤 모습일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만일 만나게 된다면, 애니가 겪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