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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친구한테 빌려온 책 중에 정말 두꺼운 3권 중에 한 권이다. 오래 걸릴 거 같았는데 읽기 힘든 스타일은 아니어서 페이지 대비 빨리 읽었다.

지금부터의 감상은 많은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작가들 작품에 많이 보이는 내가 공감하기에는 너무 먼, 그들의 DNA에 흐르는 거 같은 낭만 기류에 기인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원예가 가브리엘이다. 그는 어느 저녁 파리 식물원의 진화 전시관에서 두 아이와 함께 그곳을 찾은 빨간 후드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운명처럼 그녀에게 빠져든 그는 기억에 남은 두 아이의 이름을 발판 삼아 주변의 도움과 끈기로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 살고 있는지 알아낸다. 가정까지 버린 가브리엘은 오랜 세월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와 그의 두 연인, 앤과 클라라의 조언과 코치를 통해 어렵게 찾아낸 엘리자베트와 사랑의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유독 프랑스 작가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이런 혼외 사랑에 대한 한없는 낭만과 응원의 느낌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운명 같은 인연,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뭐 그게 잘못은 아니니까... 그런데 운명의 연인을 만났다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니지 않은가 싶은 탓에 내 마음은 소설 속 인물들마냥 이 전설의 사랑 기류에 마음껏 휩쓸려 주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엘리자베트는 가브리엘에게 남편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힌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늘 목마른 그에게 허용되었던 것은 은밀한 통화와 첩보 작전 같은 만남, 외교관인 엘리자베트가 벨기에 파견 근무 나갔을 때 그곳에서 1년간 함께 한 생활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 철저한 계획 하에 그녀가 낳은 가브리엘의 아들 미겔, 절대 죽을 때까지 진짜 아버지를 알지 못할 미겔... 소설이니까, 그래 맞다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 속 전설의 사랑 -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랑을 그렇게 불러줘야 하나 싶다 - 이라는 게 이렇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기욤 뮈소의 『아가씨와 밤』, 에밀리오 살가리의 『산도칸 몸프라쳄의 호랑이들』이 떠올랐다. 사랑을 위해 거침없이 직진하는 가브리엘에게서 산도칸이, 불륜으로 아이를 낳아 이미 다른 남자와 이룬 가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키우는 모습에서 『아가씨와 밤』의 토마와 막심이 생각났다. 아, 정말 얼마 전에 읽은 모파상의 『삐에르와 장』도 이런 설정이다. 공교롭게도 기욤 뮈소, 모파상도 프랑스 작가다. 유럽에서는 사생활과 일은 별개라서 불륜이든 치정이든 그런 문제가 있어도 일에서 프로페셔널하면 크게 개의치 않는 사회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는데 작품으로 막상 접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그들과 사회적, 문화적 갭이 큰 사람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영화 개봉도 어려운 모 감독도 그렇게 유럽에서는 계속 상도 주고 좋아하나 보다.
하나같이 가브리엘과 엘리자베트의 사랑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참 낯설다. 운명의 사랑을 만났다고 가정을 버리고 새롭게 살겠다는 지인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기는 할 거 같은데 어느 쪽이든 지금의 가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렇게 하겠다 - 이건 기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단순하게 말해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 는 데에는 나는 응원이 아니라 정말 적나라하게 팩트 폭격이나 할 거 같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다는 저자는 참 다양한 직책을 맡아 사회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 덕에 그의 다양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에 그가 했던 활동들을 입혀 더 큰 생동감을 만들어 내는 거 같았다. 읽다 보면 작가가 가진 여유, 유머러스함과 박학다식함이 느껴진다. 역자는 작가가 그려낸 공간들에 매력을 느끼고 가브리엘의 행로를 따라 작품 속에 언급된 정원들을 두루 찾아가 보았다고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만하다. 이제 다음에 만날 전설의 사랑은 좀 다른 모양새이길 바라본다. ^^